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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대 스포츠·레저 시장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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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은 스포츠·레저 시장에선 또 어떤 마법을 부릴까. 각광받는 분야나 종목, 또는 상품은 어떤 게 있을까.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를 들어 봤다.

김영란법의 최대 수혜주는 스크린골프가 될 거라는 분석이 많다. / 전민규·김경록 기자

김영란법의 최대 수혜주는 스크린골프가 될 거라는 분석이 많다. / 전민규·김경록 기자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곳이 골프장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그러나 시행 초기에 잠깐 찬바람이 불었을 뿐, 생각만큼 큰 여파는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분야별로 온도차는 느껴지고 골프 시장의 트렌드 변화도 감지된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김영란법이 생기면서 접대골프 대신 내 돈 내고 골프를 즐기는 문화가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김영란법은 골프가 대중 스포츠로 발전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재·김원의 스포츠 & 비즈(10)

실제로 접대용 골프에 쓰이는 고가의 회원권은 가격이 폭락했다. 나머지 회원권 가격은 이용 가치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골프 회원권 가격은 당분간은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소짓는 스크린골프와 퍼블릭 골프장

국내 골프장 이용객 수는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쳤던 2010년을 제외하고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5년 이용객 수는 3388만명이었고, 올해는 3416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내년 골프장 이용객은 접대골프 금지와 국내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올해보다 1.5% 줄어든 3365만명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회원제 골프장이 주춤한 반면 대중제(퍼블릭) 골프장은 김영란법의 혜택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발표한 ‘2017년 골프장산업 전망’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으로 회원제였다가 대중제로 전환한 골프장이 58곳이나 된다. 회원제 골프장의 수익성 악화가 원인이다. 회원제 골프장의 개별소비세는 카지노의 3배, 경마장의 12배, 재산세는 일반 건축물의 16배나 된다. 여기에 골프장 공급 과잉으로 인한 경쟁 격화와 회원권 분양 실패 등 악재가 겹치면서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반면 대중제 골프장은 회원제보다 내장객당 3만원가량 세금을 덜 낸다. 지난해 회원제에서 대중제로 전환한 7개 골프장의 영업이익률은 2014년 -23.9%에서 2015년 20.8%로 흑자 전환했다. 한남희 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교수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눈치 보지 않고 떳떳하게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퍼블릭 골프장은 오히려 김영란법의 뒷바람을 받아 순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중제 골프장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업이익률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린피가 낮은 것은 물론, 음식값도 회원제 골프장처럼 터무니없이 비싸게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골프장에 음식을 싸서 오는 알뜰족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팀당 10만원 이상 되는 캐디피도 부담으로 느낀다. 그래서 부각되는 게 ‘마샬 캐디’다. 기존의 캐디와는 달리 골프백을 전동카트에 실어 운전해 주고, 세컨드 샷을 할 때 남은 거리를 불러주는 정도의 역할만 하는 캐디를 말한다. 퇴직자나 경력단절여성 등도 할 수 있는 반면 캐디피는 훨씬 싸다.

김영란법의 최대 수혜주는 스크린골프가 될 거라는 분석도 많다. 실제로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한 달 동안 국내 1위 스크린골프 업체 골프존의 주가는 4.43% 올랐다. 골프존의 지주회사인 골프존유원홀딩스 역시 같은 기간 6.98% 상승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김영란법 이후 10~20% 정도 스크린골프 이용객이 늘었다고 평가한다. 스크린골프 인구는 200만 명에 이른다. 골프장 이용 부담이 낮아지면 이들이 필드로 나오게 될 것으로 본다.

서천범 소장은 “한국에는 고스톱처럼 3~4명이 모여 내기를 즐기는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스크린골프는 한국적 놀이문화로 정착했다. 진입장벽이 높았던 골프의 대중화에 스크린골프가 기여한 데 이어 김영란법 시대에는 스크린골프가 필드 골프의 완충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탁구·배드민턴·테니스 등 동호인 중심의 생활스포츠도 김영란법의 대표적인 수혜 분야로 꼽힌다.

실제 김영란법 시행 후 한 달 동안 한 대형마트의 스포츠 관련 상품 매출을 살펴보면 골프 용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떨어진 반면 탁구와 테니스 용품 매출은 각각 27%와 15% 증가했다. 여럿이 어울리지 않고도 혼자 체력 관리를 할 수 있는 피트니스·헬스 관련 용품 매출도 32% 늘었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이용하는 단지 내 피트니스센터 이용객도 부쩍 늘었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스포츠 용품 업계도 인증·검증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청탁과 접대가 줄게 될 것이다. 투명한 거래 문화가 정착되면서 오직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자전거·아웃도어는 기대에 못 미쳐

볼링은 배우기 쉽고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류스타 김수현(사진)도 프로볼러에 도전했다. / 중앙포토

볼링은 배우기 쉽고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류스타 김수현(사진)도 프로볼러에 도전했다. / 중앙포토

생활스포츠 현장 중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볼링장이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볼링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리듬체조 선수 출신 방송인 신수지가 프로볼러 테스트에 합격한 데 이어 올해는 한류스타 김수현, 가수 채연 등이 잇따라 프로볼러에 도전했다. 관련 뉴스가 온·오프라인을 장식하면서 볼링에 대한 관심이 급속 확산됐다. 요즘은 단순히 운동만 하는 게 아니라 맥주와 음료를 마실 수 있고 음악과 조명 등으로 클럽 분위기를 내는 ‘볼링 펍’이 인기다.

이환모 볼링인매거진 발행인은 “국내 볼링장은 IMF 외환위기 때 500개소(6500레인)이던 것이 2010년 이후 급속히 늘어나 현재는 600개소(8500레인)에 달한다. 볼링은 남녀노소가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핵가족 사회에서 부모-자식간 소통 창구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가족 외식 때 볼링 한두 게임 치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패턴이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프로농구 감독을 역임한 안준호 프로스포츠협회 전문위원은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지면서 실내 생활스포츠가 각광받고 있다. 특히 볼링은 배우기 쉽고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나홀로 또는 동호회 중심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자전거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자전거 시장 규모(2015년 기준)는 200만대, 자전거 이용자수는 1200만명으로 추산된다.

올해 들어서는 중국발 미세먼지, 무더위 등으로 인해 자전거 수요가 줄면서 삼천리자전거·알톤스포츠 등 주요 자전거 생산 업체들은 실적감소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인들에게 ‘주말이 있는 삶’이 보장되면서 정체기에 빠져 있는 자전거 업계에도 훈풍이 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김영란법 시행 전 한 달간 중고장터에서 자전거 거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배 늘었다. 특히 업계에서는 골프 등 고급 레저를 즐기던 사람들의 유입으로 고가의 마니아 제품 판매가 늘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지만 김영란법 이후 수요에 별다른 변화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 년간 성장 정체와 포화로 고민하던 아웃도어·트래킹 관련 업계에서도 김영란법 수혜를 기대하고 있다. 주 고객층인 40대 이상 남성의 주말·휴일 여가활동이 골프에서 등산·여행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측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접대 골프의 대안으로 등산이 부각되면서 한 백화점의 아웃도어 매출은 김영란법 시행 한 달 전 전년동기 대비 14.8%나 증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전체적으로 뚜렷한 회복세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반면 올해 신장세가 뚜렷했던 골프웨어는 김영란법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골프웨어는 올해 초 브랜드들의 프로모션과 신규 론칭이 활발했다. 타깃 고객층이 겹치는 아웃도어의 쇠락과 골프 인구의 증가 등이 호재로 작용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국내 골프웨어 매출액은 총 3조원으로 2015년(2조8000억원)보다 7.14%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지만 내년부터는 ‘검소한 골프’ 바람이 골프웨어 매출에 영향을 미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접대와 회식에서 벗어난 직장인들이 저녁 시간을 활용하는 공간으로 프로스포츠를 선택할 가능성도 커졌다. 특히 4월부터 10월까지 월요일을 빼고 매일 경기가 있는 프로야구가 김영란법 도입에 가장 반색하고 있다. 실제 김영란법 시행 이후 열린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서는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고 전 경기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남상우 한국스포츠개발원 연구원은 “음성적인 접대 문화가 양성화되면서 스포츠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스포츠 관람 문화가 기존의 접대 문화를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야구 티켓 청탁 사라져 고정팬 혜택

4월부터 10월까지 월요일을 빼고 매일 경기가 있는 프로야구가 김영란법 도입에 가장 반색하고 있다.

4월부터 10월까지 월요일을 빼고 매일 경기가 있는 프로야구가 김영란법 도입에 가장 반색하고 있다.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도 “유흥과 골프 접대 등이 막히면서 스포츠 관람 호스피탈리티 프로그램이 확산될 여지가 생겼다. 다만 프로야구 테이블석이나 프로축구장 스카이 박스 티켓을 구입해 고객을 초대하는 게 김영란법에 저촉되는지 꼼꼼히 체크해 봐야 할 것”이라며 “관공서 등의 티켓 청탁이 사라지면서 시즌 중에 자주 경기장을 찾는 고정팬들이 좋은 좌석을 차지할 수 있게 됐다. 이를 계기로 우리도 티켓 2차 판매(구입한 입장권을 인터넷 등을 통해 되파는 것) 시장을 열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각종 청탁에 시달리던 프로스포츠 구단도 김영란법이 반갑다. 서울 연고 프로야구단 관계자는 “지자체·언론 등의 티켓 청탁이 줄면서 팬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더 커졌다. 구단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업무 처리 시간이 줄어들어 긍정적이다”고 밝혔다.

다만 경기장을 찾는 발길이 늘어난다고 해서 같은 비율로 프로 스포츠 매출 볼륨이 커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희윤 스포츠경제연구소 소장은 “관람스포츠는 기본적으로 개인 소비다. 한국의 경우 입장료·식음료·기념품 정도에 국한된다. 4대 프로리그(야구·축구·배구·농구) 중에서 야구만 입장료가 1만원 선이고, 나머지는 5000원대에 그친다”고 지적한 뒤 “김영란법과 스포츠 소비의 상관관계는 심층조사를 해 봐야 알 수 있다. 아직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균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는 “김영란법의 선순환 효과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항공레저, 워터스포츠 등으로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또 “이번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를 보면서 느낀 게 많았다.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와후 추장의 저주’가 맞물리고, 컵스가 108년 만에 저주를 깨고 우승했다. 국내 프로스포츠 종사자들도 이런 스토리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안줏거리’와 ‘씹을거리’가 있어야 사람들이 프로스포츠를 지속적으로 즐기게 된다”고 조언했다.

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협회 위성식 회장(고려대 명예교수)의 말도 새겨들을 만하다. “우리 민족은 흥은 있지만 잘 노는 훈련이 미흡했다. 이제부터라도 남의 시선 의식하지 말고 레크리에이션 댄스나 뉴스포츠 종목을 익히고, 다루기 쉬운 악기도 하나씩 배워 보자. 그게 100세 시대를 잘 사는 지혜다.”

- 정영재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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