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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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문이 똑같은 사람은 없다.
범죄수사에서 지문을 꼼짝없는 증거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로 그 지문과 같은 증거능력을 갖는 실마리 가운데 성문이 있다.
글자 그대로 목소리의 무늬다.
우리가 말을 할 때면 그 소리의 장단, 고저 등에 따라 여러가지 모양의 주파수가 형성된다.
그 주파수는 밑으로 1백 헤르츠에서 위로는 7천, 8천헤르츠까지 분포되어 있다.
주파수의 분포를 「주파수 스펙트럼」이라고 한다.
이것을 복잡한 계산식의 과정을 거쳐 분석한 것을 프린트하면 얼룩덜룩한 무늬가 그려진다.
이것이 성문이다.
요즘은 그런 분석을 컴퓨터에 맡겨 놓으면 여간 세밀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1945년 미국 벨전화 연구소의 「포터」박사가 의문에 관한 논문을 최초로 발표할 때와는그 정밀도에 있어서 비교도 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성문이 다른 것은 그럴만도 하다.
입속(구중)의 용적, 두개골의 크기, 체격, 콧구멍(독강), 이(치)의 모양이 똑 같은 사람은 없다.
목소리는 입속에 공기를 넣어 혀와 입술로 그것을 진동시킬 때 나는 소리다.
따라서 성문이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성문은 5세쯤의 오차는 있지만 나이까지 가려낼 수 있다.
물론 남여의 구별도 가능하다.
몸집이 크고 작은 것, 얼굴의 모양까지도 짐작이 된다.
일본의 경우 성문 감정 전문가들은 1초 동안의 목소리 녹음으로도 성문을 90%이상 잡아낸다.
10초 이상의 샘플이 있으면 99% 성문분석이 가능하다.
성문패턴이 10개이상 비슷하게 나타나면 동일인물로 판정하는 요건이 된다.
실제로 일본에선 1976년 록히드 사건 때 거짓전화를 걸었던 한 법관을 성문으로 추적해낸 경우도 있었다.
최근엔 필리핀의 「아키노」암살사건 현장에서 녹음된 범인들의 의문을 분석한 예도 있었다.
1983년 KAL기 추락사건 때도 일본은 파일러트와 통화한 녹음테이프의 성문을 분석했었다.
21년전 미국 벨전화 연구소의 「로런스·카스터」는 『앞으로 성문은 지문을 대신해 특정인을 가려내는 증거로 사용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었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성문을 감정해 범죄수사에 이용할 계획이다.
오는 7월1일부터 활용된다고 한다.
이제는 얼굴없는 전화기 속의 범인도 성문으로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의 이기가 범죄의 이기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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