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세청장 일문일답|쌍방의 투서내용 50%정도는 사실과 일치|탈세·외화도피 드러나면 세무사찰로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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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안무혁 국세청장은 21일 하오 기자들과 만나 박건석 범양상선회장 자살사건과 관련, 국세청의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 16일 상오 국세청 조사국직원들이 박회장과 한사장집을 덮쳐 조사에 필요한 서류와 숨겨놓은 거액의 외화를 압수했다는데.
▲사실이 아니다. 내가 조사권 발동을 허락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개인의 재산권조사를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 항간에는 박회장 죽음이 경영내분탓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국세청의 탈세 및 외화도피부분에 대한 본격 조사착수에도 원인이 있다고 하는데.
▲절대로 아니다. 송장치고 살인내는 소리 하지 마라. 내 생각으로는 궁지에 몰린 한사장이 위기를 모면하려고 모호한 우리를 끌어들인 것 같다. 분명히 말하지만 조사에 착수한 일은 없다. 단지 자체정보망과 양측으로부터의 투서에 입각, 사실여부를 가리는 내사활동은 벌여왔다.
- 2월초부터 내사를 벌여왔다고 들었는데,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는가.
▲내사는 조사의 전단계로 본인도 모르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내사결과는 밝히지 않는 것이 관례다.
- 박회장이 타계한 날 하오4시까지 국세청으로부터 출두명령을 받았다는데 사실인가.
▲그것도 사실과 다르다. 내가 이근영 조사국장에게 물어봤는데 죽기 전날 이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19일 하오 5시나 20일 하오 5시에 만나할 얘기가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자진출두하려고 한 것 같다. 국세청에서 출두명령을 내린 적은 없다.
- 왜 자진해서 출두하겠다고 했겠는가.
▲내 생각엔 박회장이 내사가 진행중인 것을 눈치채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해명할 기회를 갖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한사장 측의 투서내용중 사실과 다른 내용이 루머로 나돌자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으로 본다.
- 투서는 한사장측에서 만들어왔는가.
▲아니다. 양쪽으로부터 왔는데 한사장쪽이 훨씬 많다. 투서내용의 확인결과 절반가량은 사실과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박회장의 유서에 의하면 한사장을 저주하고 있다. 한사장이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람이 죽을 때는 착해지게 마련인데 박회장유서를 보면 한사장에 대해 한을 품고 죽은것 같다.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이번 사건을 빨리 종결짓기 위해서 한사장 소재파악에 나섰다. 필요하면 관계기관과 협조, 한사장 은신처를 찾아내겠다.
- 앞으로 국세칭이 취할 행동은 무엇인가.
▲당초 박회장 장례가 끝나고 2∼3일 후 조사에 착수하려고 했는데 사건이 크게 보도되었기 때문에 당장 손을 써야겠다.
오늘 저녁중 조사국장 지휘하에 특별조사반 2개(18명)를 긴급 편성, 박회장·한사장 등 관련임원 5명에 대해 정밀조사에 착수하겠다. 탈세부분이나 외화도피부분이 드러나면 세무사찰로 전환할 수도 있다.
- 주로 임원 개인에 대한 조사인가.
▲그렇다. 일단 관련임원에 대한 조사로 한정하고 필요한 경우 법인에 대해서 부분적인 조사도 벌일 방침이다.
- 어떤 부분을 조사하게 되는가.
▲유서에 언급된 5명에 대해 기업자금의 유출 및 변태지출·외화유출과 재산위장여부를 철저히 조사, 탈세사실이 드러나면 세금추징은 물론 관계기관에 고발조치토록 하겠다.
한편 국세청은 이같은 내사자료와 투서등을 근거로 박회장과 한사장에 대해 가택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택수사 뒤 한사장은 주변사람들에게 『우리집에서는 거의 나온 것이 없다. 국세청 사람들도 「이렇게 검소하게 사느냐」고 반문할 정도였다』고 자랑하기도 했으며 박회장은 박회장대로 『한사장쪽에서 「건수」가 더 많이 적발됐다』고 주장하는 등 내사과정에도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깊었었다는 것이다.
또 박회장과 한사장의 갈등은 84년 해운통폐합조치 때부터 시작됐지만 최근 합리화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자구노력관계로 불화가 특히 깊어졌다는 것.
정부는 지난 2월 해운합리화보완대책을 수립하면서 각 업체에 자구노력을 강력히 종용했는데 이때 한사장이 나서서 『회사를 살리려면 오너가 있는 재산을 다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또 회사를 전문경영인체제로 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박회장은 당국의 자구노력종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렇다면 내가 경영일선에 나서겠다』고 해 갈등이 폭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두사람은 지난 3월27일 주총이 끝난 뒤 회장실에서 몸싸움까지 하면서 큰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는 것.
한편 범양상선의 과장들은 21일 박회장의 장례식이 끝난 뒤 모임을 갖고 국세청이 조사를 벌이기로 한 5명은 징계를 해야한다는 내용을 이사회에 건의했다는 것이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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