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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제발 국민들만큼만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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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심리학자로서 가장 즐거운 순간 중 하나가 상대방이 “조심해야겠네요. 제 마음을 읽을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며 스스로 위축될 때다. 그때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씩 웃는다. 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할 수 있으면 교수로 월급 받으면서 살겠나? 국가 간 중요한 협상이나 기업 간 빅딜이 있을 때 상대방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 줄 수만 있다면 그게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사실 해서도 안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를 꿈꾼다. 너무 궁금하니까. 그런데 그런 기술이 개발되면 동시에 누군가 내 마음도 읽을 수 있게 된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내 탐욕도, 내 나쁜 짓도, 내 더러운 성격도 모두 알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런 기술이 가능해지면 과연 우리의 세상은 더 평화로워질까, 아니면 더 혼란스러워질까?

그래도 사람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확신하며 산다. ‘저 사람 저거 좋아한다’ ‘지금 화났다’ ‘성격이 어떻다’는 등의 판단과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마치 그 사람의 태도·생각·감정·성격을 눈으로 본 것처럼. 하지만 이런 확신이 얼마나 틀릴 수 있는지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얼마나 속이면서 사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게 된다. 상사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해도 그것을 바로 지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객이 반갑지 않아도 반갑게 대한다. 배우자의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도 좋아하는 척하는 예의는 있어야 한다. 이 수많은 일상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진심을 감추고 있다. 딱 그만큼 다른 사람도 그들의 진심을 감추고 있다. 그러니 타인의 마음에 대한 판단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이 다른 의원들의 마음을 읽어 내 논란이 됐다. 현재 탄핵에 찬성·주저·반대인 의원들의 명단을 밝힌 것이다. 어떠한 방법을 통해 다른 국회의원의 마음을 알아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직접 그 의원들에게 물어봤는지, 프로파일러 출신이기에 무슨 범죄분석이나 심리분석 기법에 근거해 나온 결론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 확신에 찬 명단 덕분에 해당 의원들의 마음은 온 천하에 명백하게 드러나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국회의원의 행동은 국민의 뜻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첫째, 아직 탄핵 절차를 시작하지도 않았기에 만약 탄핵에 반대한다는 의원들이 찬성하게 되면 허위 사실 유포가 되는 것이다. 물론 형사 처벌은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사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유포한 것을 증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해당 국회의원이 원래 탄핵에 찬성했는지는 반대했다는 것만큼 증명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중요해진다. 최소한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하려 했는지, 얻은 대답이 얼마나 진실한지 확인하려 노력했다면 다소 오류가 있더라도 처벌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런 노력 없이 그냥 언론에 나오는 얘기 정도나 평소의 고정관념에 따라 명단을 만들었어도 의정 행위라고 주장하면 면책특권을 누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사법적 처벌 대상은 되지 않을 것 같다.

둘째, 그 행위가 의정 활동이었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 정치 행위는 탄핵과 같은 중요한 국회 의사결정이 무기명 투표로 진행되도록 한 국회법의 의미를 무시한 결과다. 그 비밀투표의 절차가 모든 여론조사에서 아직도 대통령을 지지하는 3~4% 정도의 국민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는 헌법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3~4%의 국민 지지는 오차를 고려하면 0%가 될 수도 있다고 여론에서 얘기하지만 동시에 7%도 될 수 있다. 그렇다면 300명의 국회의원 중 0~20여 명의 국회의원은 자신이 대변하는 유권자의 의견을 반영해 반대 투표도 할 수 있게끔 한 헌법정신이다. 만장일치가 아닌 바로 그것이 대의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이다.

그 국회의원은 항상 소수를 보호하고 대변하는 의정 활동을 주장한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국민과 정치세력이 다수가 되는 순간, 그 반대편에 있는 국민은 소수가 된다. 그 소수와 그들을 대변하는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다수의 국민에게 고자질해 집단 ‘이지메’를 통해 소수를 변화시키는 것이 과연 그가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할까? 우리 국민은 매주 100만 명이 넘게 참여하는 집회를 하면서도 헌법정신을 훼손한 대통령의 퇴진을 제대로 주장하기 위해 질서 있고 아름다운 합법적 시위를 하고, 자신을 막아서는 경찰을 끌어안는다. 그렇기에 결국 대통령은 퇴진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정치가 그런 국민의 위대함을 조금이라도 닮기를 바란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