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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너무나 다른 시대를 산 우리들의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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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논설실장

최훈
논설실장

탄핵을 접했던 상당수 대통령에게서 심리나 정서상의 문제를 찾아낼 수 있음은 흥미롭다. 집안이 어려웠던 닉슨 미 대통령은 입학 허가를 받은 하버드대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부잣집 도련님에 하버드 출신의 케네디에게 늘 콤플렉스가 있었다. 책략과 음모의 달인으로 절치부심 대통령 직에 올랐던 그는 결국 도청이라는 무리수로 낙마했다. 고졸의 노무현 대통령 역시 주류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한나라당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급기야 기울어진 운동장을 뒤엎자는 그의 노골적 여당 총선 지원 발언은 탄핵소추의 대상이 됐다. 알코올중독자인 양아버지 밑에서 자란 클린턴 대통령은 치료가 필요했던 섹스 중독을 극복하지 못해 타고난 유능함에 오점을 남겼다.

21세기 민주공화국 열린 사회에
‘왕명의 출납’으로 돌아간 청와대
나홀로 대통령에 '최순실' 싹트고
아버지 시절 군주 문화에 젖어
답답한 국민과 동문서답은 필연
늦었지만 현실 직시 해법 기대를

동문서답 담화로 탄핵을 자초해 온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과오는 뭘까. 바로 21세기 민주공화국의 대통령과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청와대에 그가 세팅해 놓은 통치의 무대는 40여 년 전 군주제의 재현이었다. 박 대통령이 가장 좋아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왕정의 튼실한 시종장(侍從長)이었다. 청와대 미래수석실에서 핵심 기관장 한 명을 교체하려 했고, 박 대통령의 구두 승인을 미리 받았다. 다른 수석실에서 해당 인사의 경질 이유가 없다고 반대해 큰 논란이 일었다. 김 실장은 그러나 "왕명이란 한번 출납되면 거둬들이는 법이 없다”고 일언지하에 반대를 일축했다. 왕명이 있는 곳에 견제와 소통은 없다. 최순실의 음험한 싹이 터 넝쿨처럼 칭칭 청와대를 휘감을 훌륭한 토양이다.

박 대통령의 지방행사 때면 “기왕 가시는 김에 지역 주요 인사들과 오찬 간담회나 하시라”는 홍보수석실의 건의가 잦았다. 대부분 “안 하겠다”는 응답이었다. 그러니 행사장 호텔 방 원탁에 참모들이 자신들과 대통령의 점심 도시락을 함께 마련해 놓는다. 하지만 자신의 도시락을 들고 가 박 대통령이 별실에서 혼자 먹는 목격담이 많았다. 메르스 사태로 들썩였던 지난해 6월.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잡혀 있었다. 각종 선택지의 보고를 기다리던 참모들이 당혹해 하는 장면이 발생했다. 아침 관저에서 내려온 박 대통령이 “저 안 갈래요”란 한마디 뒤 집무실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참모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나 독대 대면 보고라. 애당초 왕정의 무대엔 존재하지 않는 규칙들이다.

‘세월호 7시간’을 놓고 당시 박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잘 몰랐다는 진술이 적잖다. 박 대통령은 원래 자신의 동선을 잘 밝히지 않는 스타일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 지방 유세 때도 숙소를 잘 안 알려줘 참모들이 ‘문고리 3인방’에게 수소문하며 우왕좌왕하는 일이 잦았다. 관찰하되 관찰당하지 말라는 게 군주의 속성이다.

박 대통령의 사고와 심리는 육영수 여사의 죽음 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5년여(1974∼79년) ‘청와대의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18년 뒤 자기 정치에 입문했고, 그 18년 뒤 퇴진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21세기 열린 지도자로의 성장과 변화는 찾기 어려웠다. 독신의 문제점을 지적받을 때 그는 “나라와 국민과 결혼했다”곤 했다. 그러나 21세기의 국민들과 함께 지내기에 그는 자기결정력이 부족했고, 성장은 둔했으며, 과거에의 연민은 강했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대기업을 동원한 옛날식 발상에 사상누각이 되고 말았다.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에 코가 꿰인 기업들은 거의 다 부친 박정희 시대에 일어섰다.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직접 직권남용의 압력을 행사한 혐의의 사례는 포스코와 현대차다. 혹여 아버지 때 키워 줬던 빚이란 보상심리가 잠재된 것은 아니었는지까지 의문에 이르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어릴 적 성공한 아버지를 잃은 딸이 아버지에 대한 충분한 애도를 하지 못했을 경우 “언젠가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각별한 영향을 받은 딸일수록 현실의 자기 안팎에서 아버지를 재현해 내려는 강박을 갖게 된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그 시절 청와대를 완벽히 불러들였던 게 아닐까.

박 대통령이 스스로를 신민(臣民)으로부터 격리시킨 허점을 가장 효율적으로 파고든 인물이 왕궁의 집사(執事) 최순실이다. 대통령의 옷가지와 구하기 남사스러운 의약품을 챙겨 주며 영리하게 대통령의 마음을 훔쳤고, 이권으로 교환했다. 박 대통령은 요즘 최순실이 그런 사람인지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최순실’을 만든 건 바로 과거에 살았던 박 대통령 자신이 아닐까 싶다. 가장 큰 문제는 박 대통령이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문제를 모르니 내놓는 답이 없다. 늦었지만 속히 현실로 돌아와 국민 눈높이를 직시한 해법을 내놓아 주길 기대할 뿐이다.

최훈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