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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가동 환란 이후 최저…“정부 선제적 개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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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b>외환위기 극복 주역들과의 만남</b>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코리안 미러클 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출간기념회에서 전직 고위 경제관료들을 만나 경제 상황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왼쪽부터 이헌재·진념 전 경제부총리, 이규성·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유 부총리. 이 자리에서 진 전 부총리는 “소통과 배려의 리더십 아래 간명하고 구체적인 개혁의 메시지를 내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전 장관은 “새로운 이념 설정과 그에 따른 구조조정과 신기술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정치개혁이 이뤄지면 새로운 경제 도약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뉴시스]

외환위기 극복 주역들과의 만남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코리안 미러클 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출간기념회에서 전직 고위 경제관료들을 만나 경제 상황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왼쪽부터 이헌재·진념 전 경제부총리, 이규성·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유 부총리. 이 자리에서 진 전 부총리는 “소통과 배려의 리더십 아래 간명하고 구체적인 개혁의 메시지를 내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전 장관은 “새로운 이념 설정과 그에 따른 구조조정과 신기술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정치개혁이 이뤄지면 새로운 경제 도약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뉴시스]

“위기는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꿔 다시 나타난다.”

서비스업도 두 달 연속 마이너스
청년실업 늘고 고용의 질 악화 조짐
국내선 최순실 해외선 트럼프 격랑
10년 주기 위기설 현실화 가능성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한국 경제의 ‘위기 불감증’을 지적하며 던진 메시지다. 3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출간한 『코리안 미러클 4: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에서다. 책은 19년 전 한국 경제를 덮친 미증유의 위기 당시 경제 사령탑을 맡았던 4인(이규성·강봉균·이헌재·진념)의 증언을 담았다. 일종의 ‘외환위기 극복기’다. 하지만 이들의 경고는 한국 경제의 위기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란 것이다. 이날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출간 기념회에서 이 전 부총리는 “위기 상황에선 정부가 곁가지 피해를 각오하고 한발 앞서 선제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경제가 처한 환경은 19년 전 외환위기 때와 8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닮은 점이 많다. 사면초가에 몰린 꼴이 딱 그렇다. 흔들리는 정치 리더십 아래 구조조정 등 개혁 과제는 좌초 위기를 맞고 있고 때맞춰 세계 경제가 요동을 치고 있다. 경제지표에도 연이어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0월 전체 산업생산은 전달에 비해 0.4% 줄었다. 9월에 이어 두 달 연속 뒷걸음질이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단종, 조선·해운 구조조정, 철도파업 영향이 겹치며 제조업(-1.4%)은 물론 서비스업(-0.2%)도 위축됐다. 서비스업은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전월비).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0.3%까지 떨어졌다. 10월 통계로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69.8%) 이후 최저치다. 설비투자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경기 버팀목 역할을 하던 건설투자 역시 대출 규제 강화와 함께 고꾸라지고 있다. KDI는 이날 보고서에서 ‘주택건설 붐’이 잦아드는 효과로만 내년 성장률이 올해에 비해 0.5%포인트가량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경기가 위축되면 일자리는 줄고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진다. 서민·중산층이 특히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이날 한국노동연구원은 ‘2016년 노동시장 평가와 2017년 고용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실업률이 올해 3.7%(추정)보다 0.2%포인트 오른 3.9%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외환위기를 벗어난 2001년 말(4%)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이 분석도 한국은행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2.8%를 달성한다는 전제에서다. 최근 국내 연구기관들은 내년 성장률이 2.5% 선에 머무를 것이란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내년 상반기까지 조선업을 중심으로 제조업 구조조정이 지속하고 경기 둔화도 이어질 전망”이라며 “청년층을 중심으로 실업률이 급증하고 고용의 질적 수준도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위기 의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여건”이라면서 “수출 감소와 구조조정 여파로 생산·고용이 부진하고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 이후의 변동성 확대, 국내 정치 상황에 따른 소비·투자 심리 위축 등 추가적 하방 위험이 있다”고 언급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치적 상황은 예측이 어렵고 정부에서 대응 방안을 내놓기도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국정 혼란이 장기화할 경우 우리 경제가 또 한 차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에 이은 이른바 ‘10년 주기의 위기 도래설’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통상 10년 주기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국면이 닥치는데 한국은 대통령 5년 단임제라는 정치적 리스크가 맞물리며 위기가 증폭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과거에는 고성장기를 겪은 이후에 위기를 맞았지만 지금처럼 저성장이 장기화한 속에서 위기를 맞게 되면 회복이 어려운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안은 어쩔 수 없더라도 경제 문제만큼은 최대한 불확실성을 걷어주는 현실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장옥(한국경제학회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은 한마디로 손 놓고 있을 여유가 없는 경제 상황”이라면서 “정치권이 합의해 위기 관리를 총괄할 경제사령탑부터 서둘러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조민근·조현숙 기자, 김기찬 선임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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