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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36 - 바리새인들도 감탄한 예수의 현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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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산 위로 올라갔다. 예루살렘 성(城)이 한 눈에 들어왔다. 둥근 황금빛 지붕. 지금은 이슬람 성전이다. 모스크 특유의 문양으로 치장된 이슬람의 3대 성지다. 예수 당시에는 달랐다. 그곳에 유대교 성전이 있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광야를 떠돌 때는 천막으로 성막을 쳤다. 그 안에 십계명을 새긴 돌판을 모셨다. 그게 성전이었다. 신을 만나는 장소였다. 유대인은 가나안 땅에 나라를 세운 뒤에야 성을 쌓고 거대한 성전을 건축했다. 예수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의 한가운데 유대 성전이 있었다. 종교 국가였던 유대 사회의 심장에 해당하는 장소였다.

올리브 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 황금빛 지붕의 이슬람 사원이 있는 자리에 예수 당시에는 유대교 성전이 있었다.

올리브 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 황금빛 지붕의 이슬람 사원이 있는 자리에 예수 당시에는 유대교 성전이 있었다.

예수는 그곳을 향했다. 유대 광야와 사마리아, 갈릴리 일대를 돌면서 하늘의 뜻을 전하던 예수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예수와 제자들 일행은 예루살렘 동편의 올리브 산 근처까지 왔다.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의 등에 예수는 올라탔다. 나귀는 어렸다. 성경에는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라고 적혀 있다. 마태복음의 예루살렘 입성 대목에는 “그분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짐바리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고 기록돼 있다. 어린 나귀는 ‘겸손’을 상징한다. 예수는 건장한 큰 말을 타고서 위엄을 내세우며 가지 않았다. 오히려 보잘 것 없는 나귀를 타고서 ‘초라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그게 예수의 마음이었다. 유대 사회의 심장으로 자처해서 들어가는 예수의 심정은 ‘낮춤’이었다. 그 낮춤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신의 속성’을 향해 무한히 낮아지는 낮춤이다. 그게 나중에 겟세마네의 기도로 이어지고, 다시 십자가의 길로 이어졌다. 예수는 그렇게 도성으로 들어섰다.

올리브 산 아래에서 팔레스타인 소년이 어린 나귀를 탄 채 염소떼를 몰고 있었다. 예수 당시의 풍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올리브 산 아래에서 팔레스타인 소년이 어린 나귀를 탄 채 염소떼를 몰고 있었다. 예수 당시의 풍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숱한 사람이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다고 한다. 제자들은 자신의 겉옷을 바닥에 깔았다. 그 위로 예수의 나귀가 지나갔다. 그러자 수많은 군중이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다. 또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를 꺾어서 길에 깔기도 했다. 아시아의 남방 국가에서 귀한 손님을 맞을 때 꽃잎을 흩뿌리는 풍습과 통한다. 이런 술렁임 속에서 예수는 성으로 들어갔다. 누구는 예수를 알았고 누구는 예수를 몰랐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물었다. “저분이 누구냐?” 그러자 군중이 답했다. “저분은 갈릴리 나사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이시오.” (마태복음 21장11절) 그리스어 성경에는 이 대목이 그리스어로도 ‘prophetes’라고 기록돼 있다. ‘예언자’란 뜻이다. 이 단어만 봐도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어찌 봤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를 세례 요한처럼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다.

소년이 올라타도 어린 나귀는 작아 보인다. 성인이었던 예수가 탔을 때는 나귀가 더 작아 보였을 터이다.

소년이 올라타도 어린 나귀는 작아 보인다. 성인이었던 예수가 탔을 때는 나귀가 더 작아 보였을 터이다.

나는 올리브 산의 전망대에 섰다. 예수는 이 고개를 넘어갔다. 그리 높지 않은 고개였다. 예수에게는 ‘생사(生死)의 고개’였다. 여기를 넘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까닭에 예수는 결국 ‘십자가 죽음’을 맞았다. 성전 경비병들에게 체포돼서 끌려가던 날 밤에도 예수는 이 고개에 있었다. 이 산의 중턱 겟세마네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다시 한번 죽음의 고개를 넘어야 했다.

올리브 산의 전망대에서 선 순례객들이 건너편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고 있다.

올리브 산의 전망대에서 선 순례객들이 건너편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천천히 올리브 산을 내려갔다. 내리막 길이 다소 가팔랐다. 산 중턱에 유대인의 공동 묘지가 있었다. 예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묘지였다. 검정 옷을 입은 정통파 유대인 유족들이 모여서 고인을 애도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예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예수는 이 ‘답이 없는 물음’에 답을 내놓았다. 절벽처럼 아득하기만 한 삶과 죽음의 낭떠러지. 그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그 ‘다리’를 전하기 위해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유대인들이 올리브 산의 공동묘지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올리브 산의 공동묘지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예수가 찾아간 곳은 ‘유대의 심장’이었다. 예루살렘 성전 앞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돈을 바꾸어주는 환전상들과 제물로 바칠 비둘기를 파는 장수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늘에 올리는 제물의 본래 취지는 달랐다.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은 자신의 집에서 태어난 가축 중 첫째 새끼를 바쳤다. 유목민이었던 유대인들에게 가축은 재산 목록 1호였다. 그중에서도 처음 태어난 송아지나 염소는 다시 새끼를 치기 위해서도 귀하디 귀한 존재였다. 자신의 피와 살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대인들은 그걸 바쳤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대상을 떼어내 하늘에 바쳤다. 그 제물이 피를 흘리고 불에 타는 걸 보면서 그들은 무엇을 경험했을까. 제물 대신 자신이 불타는 걸 체험하지 않았을까. 제물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그 와중에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며, 자신을 씻어내리지 않았을까.

이탈리아의 파도바 스크로베니 성당에 있는 지오토 디 본도네 작 ‘성전에서 환전상을 쫓아내는 그리스도’.

이탈리아의 파도바 스크로베니 성당에 있는 조토 디 본도네 작 ‘성전에서 환전상을 쫓아내는 그리스도’.

나를 씻어내릴 때 통로가 생긴다. 우리는 그 통로를 통해 ‘신의 속성’으로 들어간다. 예루살렘 성전은 그런 곳이었다. 그런 식으로 제물을 바치며 신을 만나는 장소였다. 예수가 목격한 성전 앞 광경은 달랐다. 오히려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에 가까웠다. 하늘에 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일종의 ‘거래’가 돼 있었다. 그들이 올리는 기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바친 제물의 대가로 신에게 보답을 요구하는 일종의 ‘상거래’로 변질돼 있었다.

예수는 분노했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들어서 엎어버렸다. 왜 그랬을까. 그들의 행위가 신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하늘, 그 사이에 장벽을 쌓고 있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구나.”(마태복음 21장13절)

렘브란트 작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는 예수’.

렘브란트 작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는 예수’.

예수는 구약을 꿰고 있었다. 그는 예언서 ‘이사야서’를 인용했다. “그들의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은 나의 제단 위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지리니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이사야서 56장7절)

예수가 인용한 이사야서는 ‘기꺼이 받아들여지는’ 제물을 노래하고 있다. 그럴 때 성전은 ‘기도의 집’이 된다. 그럼 어떤 제물이 ‘기꺼이 받아들여지는’ 제물이 될까. 하늘에 바치며 나를 씻어내리는 제물이다. 내가 더 커지는 게 아니라 내가 더 작아지게 하는 제물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달랐다. 더 이상 ‘기도의 집’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느님’을 팔아서 돈을 버는 강도들의 소굴이 돼 있었다. 그래서 예수는 좌판을 엎어버렸다. 그곳은 기도의 공간이 아니라 이미 시장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을 담보로 신(神)을 팔아서 제사장들과 장사꾼들의 배를 불리는 시장. 뜻밖에도 그 시장의 이름이 ‘종교’였다.

조반니 베네데토의 17세기 중반 작 ‘상인들을 몰아내는 그리스도’. 그림의 뒤편에 손을 들도 상인들을 쫓는 예수가 보인다.

조반니 베네데토의 17세기 중반 작 ‘상인들을 몰아내는 그리스도’. 그림의 뒤편에 손을 들도 상인들을 쫓는 예수가 보인다.

나는 통곡의 벽 광장에 있는 구름다리를 타고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곳으로 갔다. 지금은 그곳에 이슬람 사원이 있었다. 여기 어디쯤이었을까. 예수가 분노하며 시장의 좌판을 엎어버린 곳 말이다. 나는 사원 앞 광장에서 눈을 감았다. ‘그럼 2000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예수가 다시 이 땅에 온다면 어떨까. 성전 대신 곳곳에 세워진 교회를 둘러본다면 어떨까. 예수는 과연 모든 집을 ‘기도의 집’이라 부를까. 아니면 적지 않은 집들을 향해 ‘강도들의 소굴’이라 꾸짖게 될까.’ 나는 여전히 궁금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교회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환전을 하고 비둘기를 팔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베이직교회의 조정민 목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종교는 죄 산업이다. 모든 종교는 죄를 속해주거나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마일리지(포인트)를 쌓을 것을 요구한다. 예수님은 ‘노 마일리지’를 주장하신 분이다. 예수님 이후로 죄의식을 빌미로 하는 ‘죄 산업’은 끝이 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건 종교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본질이었다. 예수님은 종교가 아니다. 종교성과 영성은 다르다”고 덧붙였다.

야코프 요르단스의 1650년경 작 ‘성전에서 상인과 환전상을 몰아내는 그리스도’. 예수의 채찍질 앞에 ‘인간의 욕망’이 물러가고 있다.

야코프 요르단스의 1650년경 작 ‘성전에서 상인과 환전상을 몰아내는 그리스도’. 예수의 채찍질 앞에 ‘인간의 욕망’이 물러가고 있다.

그렇다. 종교성과 영성은 다르다. 예수 당시 유대인들이 뼛속까지 절어있던 건 종교성이었다. 유대인들은 종교성을 통해 신을 만나고자 했다. 조 목사는 “예수님은 달랐다. 종교성이 극대화된 유대교 안에서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 보이셨다. 그리스도교가 종종 본질로부터 벗어나는 이유도 ‘종교성’ 때문이다. 종교성은 진정한 영성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를 예수 안에 거하게 하는 통로는 종교성이 아니다. 영성이다. 종교성을 통해서는 더욱 더 강한 율법주의자만 양성될 뿐이다. 사람들은 종종 착각한다. 종교성이 강할수록 믿음이 강하다고 여긴다. 종교성이 강할수록 신앙이 강하다고 여긴다. 그게 아니다. 종교성이 강할수록 나의 고집이 강한 거다. 종교성이 강할수록 종교에 대한 에고의 틀, 다시 말해 에고의 틀어쥠이 강할 뿐이다. 그건 장벽이다. 나와 예수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다. 그로 인해 나와 예수를 잇는 통로가 막힌다.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기도의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바뀔 수 있음도 바로 그 종교성 때문임을 모른다.

올리브 산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가는 내리막 길은 가파르다. 순례객들이 예수가 갔던 길을 밟아서 순례하고 있다.

올리브 산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가는 내리막 길은 가파르다. 순례객들이 예수가 갔던 길을 밟아서 순례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토론을 즐긴다. 유대인 도서관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시장통처럼 시끄러웠다. 사람들은 둘씩 짝을 지어 종교에 관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시 짝을 바꾸었다. 그날 처음 만난 낯선 사람과 토론과 논쟁을 이어갔다. 유대인의 오랜 전통이다. 예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예루살렘 성전이나 회당에서는 종종 강연이 열리고 토론도 벌어졌다. 예수도 그랬다.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예수에게 다가와서 따졌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그건 ‘예수의 정체’를 묻는 말이었다. 예수는 이렇게 되물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마태복음 21장24~25절)

예수의 물음에 그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예수가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소?”라고 할 것이고, “사람에서 왔다”고 하면 세례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는 주위 군중의 분노를 감당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그들은 나름의 묘안을 찾았다.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모르겠소.” 그 말을 들은 예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마태복음 21장27절)

제임스 티소의 작품. 예수가 유대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제임스 티소의 작품. 예수가 유대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대목을 읽다가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예수의 순발력이 놀라웠다.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님은 정말 머리가 좋으셨나봐. 함정에 빠뜨리려는 공격적인 질문을 한 마디로 물리쳤으니 말이지. 그것도 너무나 재치가 넘치게 말이야.” 맞는 말이다. 예수의 답은 재치와 위트가 넘치고, 발빠른 대응도 놀라울 정도다. 그런데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대목이 하나 있다. 예수의 답이 나온 뿌리다. 그건 재치도 아니고, 위트도 아니고, 순발력도 아니다. 그 뿌리는 ‘안목’이다. 이치를 뚫은 자의 안목이다. 다시 말해 눈이다. ‘신의 속성’을 품은 이의 눈이다. 그 눈이 때로는 재치로, 때로는 위트로, 때로는 순발력으로 뿜어져 나올 따름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반감이 더욱 커졌을 터이다. 예수는 조금씩 그들의 ‘표적’이 돼가고 있었다. 예수는 종교성에만 매달리는 유대의 율법주의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바리새인들은 발끈했다. ‘어떻게 하면 예수에게 올가미를 씌울 수 있을까’(마태복음 22장15절)하고 머리를 짜냈다. 결국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서 묻게 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마태복음 22장17절)

예수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통용됐던 로마의 데나리온 주화. 동전 앞에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예수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통용됐던 로마의 데나리온 주화. 동전 앞에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예!”라고 답해도 올가미에 묶이고, “아니오!”라고 답해도 올가미에 묶인다. 세금을 내라고 하면 ‘유대의 반역자’가 되고,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의 적’이 된다. 바리새인들은 그걸 노렸다. 예수는 이 물음에 숨겨진 올가미를 꿰뚫어 봤다. 그리고 세금으로 내는 동전을 가져 오라고 했다. 당시 데나리온 동전의 앞면에는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예수는 이렇게 되물었다.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그들은 “황제의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예수가 답을 던졌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복음 22장21절) 그 유명한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Caesar the things which are Caesar’s)”란 구절이다.

당시 로마는 여러 신들을 섬기는 다신교 사회였다. 로마의 황제는 그 많은 신들 중 하나로 여겨졌다. 로마인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신은 여럿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에게는 달랐다. 그들은 유일신을 믿었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로마에 세금을 바치느냐, 마느냐의 차원이 아니었다. 우상을 섬기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유대인들은 오직 하느님에게만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로마의 식민지가 되면서 농작물과 세금 등을 바쳐야 했다. 거기에는 ‘로마의 신 황제에게 바치는 제물’이란 의미가 녹아 있었다. 그러니 로마에 세금을 내는 일 자체가 유대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정확하게 그곳에 올가미를 놓았다. 그러나 예수는 걸려들지 않았다. 예수는 명쾌한 답을 내놓았고, 바리새인들조차 그 말에 감탄하며 돌아설 정도였다.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시내 곳곳에 동상을 세우고 이들을 신처럼 여겼다.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시내 곳곳에 동상을 세우고 이들을 신처럼 여겼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쓴 역사서 『유대고대사』에는 이와 관련된 일화가 기록돼 있다. 로마가 파견한 유대의 총독 빌라도가 로마 황제가 그려진 군기를 한밤중에 예루살렘으로 들여오려고 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목숨까지 내놓고 농성을 벌였다고 한다.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십계명에 기록된 ‘우상 숭배’에 대한 금지 항목 때문이었다. 구약에는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유대인들은 집안의 창살이나 창틀에도 문양을 새기지 않았다. 헤롯 안디바의 궁전은 동물들의 형상으로 장식되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이 불을 지르기도 했다.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군기는 ‘우상’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는 치명적인 독을 품은 올가미였다.

충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예수를 잡기 위해 율법주의자들은 계속 올가미를 놓았다. 급기야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마가복음 12장38~40절)

예수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죽음이란 ‘어둠’을 향한 입성이자, 동시에 십자가라는 ‘빛’을 향한 입성이기도 했다.

예수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죽음이란 ‘어둠’을 향한 입성이자, 동시에 십자가라는 ‘빛’을 향한 입성이기도 했다.

예루살렘 도성에서도 예수는 파격적인 가르침을 멈추지 않았다. 성전의 사제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표적으로 삼기 시작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예수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37회에서 계속됩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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