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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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무튼 계절은 좋은 때다. 하루아침에 창 밖이 환하다. 죽은 듯 마른 나뭇가지에선 목련이 피고, 마당 구석구석에선 생각지도 않은 새순들이 앞을 다투며 솟아오른다.
심난한 세상에도 한 가닥 위로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대자연이 경이로울 뿐이다. 그 앞에선 뭇 사람들의 수다스러움이 무색하고, 아귀다툼이 부끄럽다.
그나마 계절의 변화마저 없었다면 우리의 나날은 얼마나 모래를 심는 기분일까. 요즘 같은 난한 세상에 말이다.
그 점엔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이 행복하다. 온대지방은 꽃의 종류도 많고, 봄, 가을이면 꽃의 절정기를 이루어 산천이 수려하다.
봄에는 남쪽에서부터 꽃 전선이 그야말로 꽃물결을 이루며 밀려온다. 개나리, 목련, 진달래, 매화가 릴레이라도 하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러온다. 조물주가 우리들의 신방에 매일같이 새로운 꽃무늬의 양탄자를 깔아주는 것 같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 오랜 옛날부터 꽃을 좋아했다. 무령왕 (재위 501∼523년)능에서 출토된 왕비의 귀걸이엔 잎사귀 모양의 영락(영락)이 잠식되어 있다. 금형 장식의 꽃무늬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백제시대엔 하다못해 수막새에까지도 연꽃을 새겨 넣었다. 통일신라시대의 벽돌엔 도깨비 무늬의 수막새가 있는가 하면 정교한 꽃무늬의 수막새도 있다. 정서적으로 그만큼 여유와 멋이 있었다는 얘기다.
꽃은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고 화사하게 해준다. 꽃은 아무 말이 없지만 그 속엔 청초함과 따뜻함과 평화가 있다. 그런 꽃을 좋아하는 마음은 풍류에 비유할 수도 있다.
풍류라면 노라리 생활을 생각하기 쉽지만 멋이 없는 사람은 그런 것을 즐길 여유가 없다. 풍류는 정신의 풍요로움이 빚어내는 멋이다.
우리가 배고픔에 쫓기고, 전쟁에 시달리고, 세상 풍파에 부대낄 때 누가 꽃을 거들떠나 보았는가.
지금은 꽃 재배가 하나의 산업을 이룰 만큼 시양상품이 되었다. 주부들도 콩나물 봉지와 함께 꽃 한묶음을 사들고 간다.
동네마다 꽃을 파는 구멍가게들이 제법 즐비하다.
마당이 없는 집에도 창변에 팬지며, 피튜니아 꽃 화분을 놓는 마음의 여유쯤은 있다. 사람들은 삵의 윤택함을 마음의 풍요로움에서 찾으려한다.
이 신선하고 눈부신 봄날에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은 봄을 모르는 우리의 정치 풍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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