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재개」겨냥한 외교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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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의 대북한 외교관 접촉완화지침이「인적교류」의 허용이라면 이번의 인도적 교역추진계획은 「물적 교류」의 개시신호이자 미국의 대북한정책이 더욱 적극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가시적 외교공세라 할 수 있다.
이번 제안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과 하나의 단서조항이 달려 있어 이미 지난 3월23일 아프리카 가나에서「실행」에 옮겨진 미상한 외교관 접촉의 인적교류와는 크게 구별된다.
이를테면 미-북한간 교역에 앞서 남북대화 재개와 88서울올림픽의 참가가 선행돼야 하고 만일 이 교역이 실행의 단계에 오를 경우 한-중공, 한-소련간의 교역도「형평」의 원칙에 따라 같은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전제조건과 단서조항이다.
따라서 북한이 여기에 호응하더라도 인도적 교역은 올림픽이 열리는 88년 이후에나 실현될 수 있고 이에 상응한 한·중공, 한-소련간의 직접 교역도 그 이후에나 가능하게 된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 같은 교역이 실현될 경우의 한반도정세·동북아정세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통한 소식통은『미국의 이번 제안을 큰 발전으로 봐서는 곤란하며 신중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또 이 제안이 미국의 대북한정책에 있어 대전환의 예고라는 「확대해석」 목의 시각보다 어떻게 해서든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대화와 88서울올림픽에 성의 있는 자세로 임하도록 유도하는 「한정적 의미」로 보려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은 사실이다.
다시 말해 현재 우리측이 제의해 놓고 있는 기존대화 재개 바탕위의 총리회담과 일부종목의 평양 분산개최를 허용한 서울올림픽에 북한의 긍정적인 참가자세 확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에서 이 제안이 나왔다는 사실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식통들 중에는 북한이 이번 제안을 그들이 주장해온 한국북한 상부국 간의 3자회담으로 가는 길목이라고 이해할 경우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겠으나 그보다는 인도적 교역 실현의 전제조건인 남북대화 재개와 서울올림픽참가를 쉽게 받아 들일 수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강한 인상이다.
한 소식통은『「인도적 교역」(Humanitarism Trade)이란 용어사용은 아직 세계 외교사에 그 구체적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비정치적·비전략적·평화적 물자의 제한적 의미의 교역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어쨌든 미국이 북한에 대해「교역」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 북한에 대해 걸어 잠갔던 문의 빗장을 하나 열어 놓았다는 것 자체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최근 연이어 나오고 있는 강대국의 한반도논의가 아직 구체적인 윤곽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긴장완화를 목표로, 더 나아가서는 동북아의 새로운 국제질서형성을 목표로 뭔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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