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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000만 지키자] “저리 가서 놀아” 내쫓던 애들 이젠 경로당 복덩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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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원터골경로당은 노인들만 찾는 공간이 아니다. 동네 아이들이 오며 가며 어르신들께 인사도 하고, 화장실이 급하다거나 목이 마르다며 찾아온다. 경로당 어르신을 만나면 “할머니” 하고 뛰어가 안기는 아이도 있다. 이런 동네 분위기는 3년 전엔 그렇지 않았다. 공원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다 경로당 화단을 망치거나 유리창을 깨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경로당 어르신들은 “저리 가서 놀아라”라며 아이들을 쫓아내곤 했다. 여느 동네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강동노인복지관이 2013년 ‘세대 공존 프로젝트-어울마당’이라는 이름으로 격주마다 공원에 천막과 부스를 설치했다. 이곳에서 어르신과 아이들이 함께 가면을 그리거나 액자를 만들게 한 것이다.

서울 명일동 어린이공원 안 경로당
예전엔 꼬마들 공놀이에 티격태격

경로당 회장인 정상례(71)씨는 “예전엔 애들이 공놀이 못하게 한다고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뛰어와 안기니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현정(11)양은 “2년 전 다른 동네로 이사했는데 할머니들이 보고 싶어 학교 끝나고 지하철을 타고 경로당에 찾아온다”고 말했다.

원터골경로당의 ‘어울마당’이 모범 사례로 자리 잡자 강동구는 경로당 앞에 텃밭을 조성했다. 어르신, 아이들이 함께 텃밭에서 시금치·상추·파·허브 등을 재배한다. 물을 주고 키워 수확해 나눠 먹는다. 전민지 녹원가람유치원 교사는 “어르신을 본 적 없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텃밭 수확물로 요리를 해 먹을 때 먼저 먹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할머니 입에 먼저 음식을 넣어드렸다”고 말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초고령 노인이 증가하면서 3~4세대가 동시대를 사는 상황에서 강동구의 사례는 세대 공존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성미선 강동노인종합복지관장은 원터골경로당 사례 등 세대 공감 프로젝트 사례를 25일 발표한다. 이날 서울시립대에서 ‘한국 사회의 세대 공존 가능성 탐색’을 주제로 열리는 한국노년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다. 그는 “세대 공존이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동구 배움터 지역아동센터에서 열린 그린시니어 행사에서 한 아동이 어르신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사진 강동노인종합복지관]

지난해 10월 서울 강동구 배움터 지역아동센터에서 열린 그린시니어 행사에서 한 아동이 어르신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사진 강동노인종합복지관]

이 복지관이 시행하는 프로젝트는 다양하다. 어울마당, 텃밭 선생님뿐 아니라 어르신이 도시락을 만들어 저소득 아동에게 전달하는 ‘그린시니어’, 고등·대학생이 어르신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드리거나 서울 나들이 등의 활동을 통해 배우는 ‘1·3세대 배움터’ 등이다. 성 관장은 “노인에 대한 편견과 인식이 형성되는 12~13세 이전에 아이들이 어르신과 어울리는 경험을 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활동이 지역 단위로 견고해진다면 향후 아이들 양육·보육에 마을 어르신이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는 ▶물리적 공존(노인·청소년·어린이를 위한 혼합 공공시설) ▶정서·문화적 공존(이웃 간 교환노동 형태로 조부모 참여 공동육아제도) ▶경제적 공존(은퇴자 자금과 청년의 아이디어를 연계한 창업 지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국보다 고령화 과정을 먼저 겪은 일본은 1970년대부터 세대 공존 프로그램이 개발됐다. 한정란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 종류에 어린이집 보조 등을 포함하면 아이들도 노인과 함께 사는 훈련이 되고, 노인도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며 “여러 세대가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는 ‘세대공동체’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viv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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