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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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기예보가 시작된 것이 순전히 전쟁덕분이라는게 흥미롭다.
1854년 11월14일 크리미아 전쟁이 한창일 때 흑해의 바라크라바에 정박하고 있던 전함 앙리4세호를 비롯한 프랑스함대는 폭풍우를 만나 궤멸하고 말았다.
「나폴레옹」3세의 요청에 따라 육군장관 「바이안」 원수는 천문학자 「르·벨리에」 에게 이 폭풍우가 예측 가능한 것이었는가의 여부를 조사하도록 위탁했다.
여러 대학과 관측소에서 만든 관측표를 모아 검토한 결과 그는 이바람이 시베리아반도에서 이동해온 것을 알수 있었다.
이것을 빌미로 프랑스 정부는 1856년 파리등 각지의 기상관측 결과를 전신으로 모아 폭풍경보를 내는 기상사업을 시작했다.
「르·밸리에」가 지휘하는 파리천문대가 정기적로 「일기보고」를 배포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부터였다.
물론 기상에 관한 기록은 1655년에 만들어진 「기상일지」 가 피렌체에서 발견되고 있고 더올라가면 기원전 350년에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가「기상학」(meteorologica)이란 책까지 쓰고 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인공위성이나 컴퓨터를 동원하는 오늘의 기상학자들도 다음주의 날씨를 정확히 예보할 수는 없다. 오직 어림만이 가능할 뿐이다.
기상조건이 너무나 미묘하게 변하기 때문에 장기예보는 오보율이 높을 밖에 없다.
기상학자들은 현재의 능력으로는 36시간 안의 날씨정도는 정확히 예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5일까지는 오보율을 낮출수 있지만 그 이상이면 오보율은 50%를 넘는다.「세계기상의 날」 인 23일에 우리중앙기상대가 오는 7월부터 기상확률 예보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약간」 「간간이」 「많이L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리던 강우나 강설량을 %로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비가 내릴 확률은 65%이고 비가 내린다면 5mm미만일 확률이 45%, 5mm이상 10mm미만은 30%…」 라고 하는 예보는 너무 어수선해서 일반국민이 알아듣기는 더 어려울 것 같다.
특별히 문의하는 경우에만 확률예보를 서비스한다니 다행이랄까.
중요한 것은 기상예보의 정도를 높이는 기술능력과 서비스의 다양화다. 선진국에서는 생활정보의 단계에서 세일 서비스로 나가고 있다.
일본최대의 미국계 민간 기상정보 서비스회사인 오션루트는 후악원스타디윰과 계약해 구양주변의 강우를 예보한다.
물론 가장 이용이 많은 것은 선박의 기상정보다.
선박의 안전과 항해일수의 단축은 바로 돈과 통한다.
우리의 기상예보 수준이 하루빨리 그런 필요에 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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