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고 르기|이기웅<출판인·열화당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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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진학한 우리 애에게 선물하고 싶은데, 좋은 문학전집 하나 골라주시겠어요?』
출판일을 하고 있는 내게 이웃들은 종종 이런 부탁을 해곤 한다. 그런데 책 고르는 것은 쉽지 않아 그때마다 애를 먹는다.
우리 시대를 가리켜 「선택의 시대」라고 한다. 쏟아져 나오는 공산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패션, 넘쳐 흐르는 갖가지 정보, 정치적 선택, 진학이나 취직, 그리고 배우자 고르기 등등. 자신의 기준과 견해에 맞는 뭔가를 끊임 없이 골라대야만 생존이 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참답게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올바른 선택의 방법을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되게 돼있다.
책의 종류는 엄청나고, 게다가 하루에도 1백종에 가까운 새 책들이 발행된다고 한다. 큰 서점의 서가에 꽂힌 엄청난 양의 책을 보면, 그 책이 그 책 같고 해서 뭘 어떻게 골라야 할지 아연해진다.
나는 내 나름의 책 고르는 기준을 생각해 놓고 있다. 우선 출판사와 저자의 이름을 본다. 그리고 서문과 목차를 찬찬히 살피고, 목차에서 읽고 싶은 항목 하나를 본문에서 찾아 꼼꼼히 읽어본다. 그로써 전체 내용을 측정한다. 교정·인쇄·제본 상태와 지질을 점검한다. 에디 토리얼 디자인 역시 나의 책 고르기 기준 가운데 중요한 의치를 차지한다.
요즈음 쏟아지는 독서 정보량을 주체할 수 없어 서점의 대형화 붐이 일고, 전국 곳곳에 큰 규모의 서점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사회의 일각에서는 이처럼 쏟아져 나오는 책에 대해 회의하는 반성이 일기도 한다. 저 많은 책들이 우리에게 정말 가치있는가, 온당한 정보들인가고.
그 많은 책들 가운데서 적절히 골라 읽어야하고, 따라서 좋은 책 만드는 출판사와 독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이른바「책의 중개 기능」들, 즉 서점이나 도서관·북 클럽·도서선정 제도·도서 안내 책자, 그리고 비평가와 독서 지도 교사 등의 올바른 역할이 더욱 기대되고 있다.
책의 건강한 중개 기능들이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어 책을 선택하려는 독자를 도와줘야 한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명제 못지 않게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비단 책의 경우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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