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무시한 아파트분양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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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네 생활중에 먹고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식구들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집 한칸 장만하는 것처럼 큰 일도 흔치 않다. 더구나 9백79만명이 북적거리는 가운데 두명 중 한명꼴로 남의 집 셋방살이를 하고있는 서울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까닭에선지 사람들은 여러가지 투기현상중에서도 집(아파트)투기를 가장 빨리 사라져야할 「사회악」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아파트투기를 막기 위한 여러가지규제(?)가 꼬리를 물면서 등장, 어쨌든 요즘은 큰 투기바람이 일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분양을 마친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 때아닌 투기 열풍이 불어 최고 13·2대1의 분양신청 경쟁률을 보였는데 정작 당첨자 발표후 계약을 받고 보니 계약률은 10%도 채 못되는 이상현상이 벌어졌다. 전체 평균 분양신청률 3대1에 계약률은 겨우 31%. 『일체 자금출처조사등은 하지 않는다. 분양신청일 하루 전날까지만 주택청약예금에 가입하면 신청자격을 준다. 전에 아파트에 당첨됐다가 계약을 포기, 5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들도 신청할 수 있다. 또 앞으로 5년동안에도 재당첨 금지기간 규정을 두지 않는다. 보성중고·창덕여고가 이전, 명문학군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앞으로 지하철도들어갈 것이고 당장 지하철역을 연결하는 순환버스노선이 생긴다.….』
관(서울시)이 부동산업자에게 초청장을 돌리고 아파트소개회까지 여는 등 복덕방 노릇을 하면서 내건 이 같은 특혜조건은 그동안 잠잠했던 투기꾼들의 입맛을 돋우고도 남았다.
그러나 몇천만원씩의 기부금을 써냈는데도 당첨후 프리미엄이 붙지않는 등 인기가 별로 없자 무더기 계약포기 상태에 이른 것.
결국 「이번에야 어떻게 집을 장만할 수 있을까」가슴죄며 형편에 닿는 기부금을 써낸 진짜 수요자들만 또다시 골탕을 먹은 셈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평형별로 미계약상황은 밝히지 않으면서 1천2백61명의 예비 당첨자에게 개별통보, 계약을 권유키로 했다니 기존 아파트분양 원칙을 깡그리 뭉개면서 스스로 투기바람을 일으켰던 관이 이제「속임수 분양」에까지 손을 댔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됐다.
올림픽때 쓸 기부금을 거둔다해서 그렇게 많은 특혜를 준 것부터가 문제였다. 예외는 또다른 예외를 낳고, 특혜는 더욱 큰특혜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유엔이 정한 「집없는 사람을 위한 해」에 집없는 「보통 서울특별시민」이 느낀 이 참담한 마음을 누가 달래줄 것인가. 양재찬<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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