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컴퓨터가 재미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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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 꿈은 핵물리학자가 되는 거니까 컴퓨터정도는 당연히 배워 둬야지요.』
『저희가 어른이 될 2000년대는 하이테크시대니까 지금부터 컴퓨터와 친해 두면 여러모로 유리할거라고 엄마가 권하셨어요.』
『우리 사촌형은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한테 곧잘 점을 쳐 드리는데 모두들 재미있어 하셔요. 저도 컴퓨터를 배우면 점을 칠 수 있고 컴퓨터게임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어린이들이 컴퓨터를 배우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핵물리학」이니「하이테크」라는 낱말들을 일상용어처럼 자연스레 입에 올리는 이 어린이들이 컴퓨터 배우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은 얼핏 컴퓨터시대의 개막을 연상시킬 정도. 사실상 지난 83년이래 국내에 보급된 8비트 짜리 퍼스널컴퓨터는 약 20만 대에 이르며 이중 가정용의 대부분은 자녀들의 성화 때문에 「교육 투자하는 셈치고」부모들이 구입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지난 4일 하오4시가 가까워지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컴퓨터 타운」에 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한 어린이들은 이내컴퓨터 앞에 마주앉더니 키보드를 두드리며 각자 전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거나 컴퓨터게임을 즐기며 저마다 열심이었다. 원래 강의는 4시30분에 시작되지만 잠시라도 컴퓨터를 더 다뤄 보려고 저마다 서둘러 달려온 것이다.
『어차피 저희는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야 할 테니까 시간에 더 쫓기는 중학생이 되기 전에 배워 두려고 지난 겨울방학 때부터 시작했어요』라는 송태진군(영동국교 5).
『컴퓨터를 배운다니까 친구들이 한결같이 전자오락도 할 수 있느냐고 묻는걸 보면 역시 컴퓨터게임이 제일 큰 관심거리인 모양』이라고 말한다.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지 1개월만에 부모님을 졸라 8비트 짜리 퍼스널 컴퓨터를 56만 원쯤에 샀는데『숙제와 예습·복습을 모두 끝마친 뒤에만 컴퓨터에 매달릴 것』을 다짐했단다. 자녀에게 퍼스널컴퓨터를 사준 부모들 중에는 어린이가 밤낮없이 컴퓨터게임만 하려 드는 바람에 학교성적에 지장이 많다며 컴퓨터를 상자에 넣어 집안 어딘가에 처박아 두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오누이가 나란히 컴퓨터를 배우러 다닌다는 육근영군(여의도 중 1)과 육신영 양(윤중 국교 6)은 모두『학습프로그램을 스스로 짤 수 있을 정도로 컴퓨터에 익숙해질 때까지 배울 생각』이라고 말한다.
오빠 근영 군은『앞으로 과학자가 되는 게 소원』이고 동생 신영 양은『앞으로 무얼 하든 컴퓨터를 다룰 줄 알면 남보다 앞설 수 있을 테니까』 각각 컴퓨터를 배운다는데 일단 학교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면 더욱 좋지 않겠느냐는 것. 근영 군은『6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 중에 컴퓨터를 배운 10여명은 대체로 성적은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컴퓨터타운」의 교육담당자 강선영씨는『어린이들이 컴퓨터게임에만 몰두할 까 봐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너무 지나치지만 않으면 컴퓨터에 대한 흥미를 지속시키는데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고 설명. 어린이들이 영어로 된 명령어를 사용하며 컴퓨터를 배워야 하므로 2∼3개월 쫌 지나면 너무 어렵다며 포기하기 쉬운데 이때 컴퓨터 게임은 지겹고 싫증나는 고비를 넘기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
또 3∼4개월 정도 지나면 어린이 스스로 원리를 터득해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짜 보는 사이 집중력과 조직적 사고력 등을 키울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부모님을 졸라 생일선물로 퍼스널컴퓨터를 받았다는 박철우 군(영중 국교 6)도『처음에는 친구들과 오락용 디스크를 서로 바꿔 가며 컴퓨터게임에만 몰두했는데 컴퓨터에 대해 차츰 알게 되니까 직접 프로그램을 짜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라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집 모양이 나타난 모니터를 대견스런 듯 들여다본다.
『지난 83∼85년 사이 컴퓨터교육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가 한때 주춤했으나 요즘 다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는 강선영씨. 방학기간에는 희망자를 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수백 명씩 몰리고 평소에도 수십 명이 계속 컴퓨터를 배우는데 국민학교 어린이들은 4∼6학년이 대부분이고 여자어린이는 전체의 약 30%로 남자어린이들보다 훨씬 적다고 말한다. 영동에 있는 삼성컴퓨터 전시장의 경우도 무료로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방과후면 앞을 다투어 달려오는 20명 가량의 국민학생 중 여자어린이는 3∼4명뿐.『영어 알파베트도 잘 모르는 어린이들이 컴퓨터를 웬만한 어른들보다 빨리 배우는 게 신기할 정도』라는 장봉춘씨는 『외국어·수영과 함께 컴퓨터도 빨리 배울수록 쉬우므로 조기교육이 기대되는 분야』라고 강조한다.
한편 다양하고 풍부한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아쉬워하는 한국시청각교육협회 윤여택 전무는『권장도서라는 게 있듯이 교사나 관계전문가들이 같은 오락용 프로그램이라도 지능개발에 도움이 되는 것 등 좋은 소프트웨어를 안내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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