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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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일 밤 방콕에서 벌어진 킹즈컵축구 결승전. 일찌감치 TV를 마주앉은 국민들은 모두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며 남북한이 펼친 한판승부를 지겨보았다.
개인기와 경기운영에 노련미를 보인 우리측의 포철과 체력을 바탕으로 스피드와 조직력을 앞세운 북한팀의 이 대결은 예선전에서 포철이 1대0으로 이겼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모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밀고 밀리는 1시간30분동안 양팀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백중한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결과는 아쉽게도 스트라이커 최순호의 허벅지 부상을 극복하지 못한 포철의 분패로 끝나고 말았다. 거기에다 행운마저 따라주지 않았다. 전반 4O분 통렬한 롱슛이 북한 골크로스바를 맞고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이길 때도, 질때도 있는 법이다. 문제는 얼마나 페어플레이를 하느냐에 달렸다.
그런 점에서 이날 양팀은 먼 이국땅에서 아쉬움 없은 경기를 치렀다. 특히 포철선수들은 자신의 차징으로 넘어진 북한선수를 일으켜세우고 등을 두드러주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만큼 우리 선수들의 매너는 깨끗했고 정신력도 성숙했다.
이런 페어플레이야말로 골 몇개 먹고 안먹는·것보다 더 깊은 인상을 관중에게 오래 심어준다.
우리는 지난78년12월20일밤, 같은태국 수도 방콕에서 벌어진 해방후 첫 남북대결을 기억한다. 아시안게임 하이라이트로 치러진 이날 경기에 앞서 태국의 매스컴들은 한결같이 양팀이 축구가 아닌『다른싸움』으로 한바탕 격돌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빗나갔다. 양팀은 시종 정정당당하게 페어플레이를 벌인 끝에 공동우승이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서로를 껴안고 기념촬영까지 했다. 그것은6만여 태국 관중들의 의표를 찌른 생생한 한편의 드라머였다.
공 하나를 놓고 22명의 선수들이 펼치는이 축구 시합은 국토분단이라는 현실을 새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있다.
따라서 1일밤 방콕의 대회전은 비록 우리가 경기에는 졌지만 민족의 자존심을 저버리지 않은 명승부였다. 더구나 우리 포철은 단일 직장팀이고 북한은 국가대표팀이라고 생각하면 경기에서도 결코 지지 않았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경기를 생중계한 TV사의 결단이다. 모처럼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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