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시중은행 대여금고 조사…“자금세탁 창구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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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시중은행의 대여금고 실태 조사에 나섰다. 검찰이 지난 11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KEB하나은행ㆍKB국민은행의 대여금고를 압수수색한 것을 계기로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조치다.

16일 금감원의 중간 조사결과에 따르면 은행들이 대여금고를 편법적으로 운영하거나 특정인에게 특혜를 준 정황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다만 컴퓨터식금고의 경우 방문자의 신원확인을 하지 않아 검은 돈의 거래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감원에 따르면 시중은행은 세 종류(수동식ㆍ컴퓨터식ㆍ생체인증식)의 대여금고를 운영하고 있다. 수동식 금고는 개설자나 대리인이 이용할 수 있는 금고로, 방문자가 신원기록을 남겨야 한다. 은행 직원 입회하에 고객 보유 열쇠와 은행 보유 열쇠를 동시에 돌려야 열리는 구조다. 생체인증식 금고는 최근 생긴 것으로 지문인식 같은 인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개설자 본인만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비밀번호만 누르면 열 수 있는 컴퓨터식 금고다. 누구나 비밀번호만 알면 열 수 있기 때문에 방문자의 기록이 남지 않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동현금입출금기(ATM)과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방문자의 신원 확인을 하지 않는 점을 들어 금융실명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컴퓨터식금고도 다른 금고와 마찬가지로 개설할 때 개설자의 신분의 철저히 확인하기 때문에 실명제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컴퓨터식금고가 자금세탁 창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에서 출금한 자금을 컴퓨터식 대여금고에 넣었다 빼는 방식을 반복해 비자금 등으로 쓰면 계좌추적을 해도 돈의 ‘꼬리표’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최순실씨가 하나은행 서울 압구정중앙지점의 컴퓨터식금고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에 대해 하나은행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해명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압구정중앙지점엔 수동식금고만 있기 때문에 최씨도 수동식금고를 이용했다”며 “최씨를 비롯한 모든 금고 방문자의 신원이 기록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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