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목숨 흥정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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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을 탈출한 민홍구씨의 억류해체와 행선지 문제를 놓고 한일간에 새로운 외교게임이 시작됐다.
민씨가 북한을 탈출한 것은 3년3개월 전이다. 83년11월4일 북한-일본 무역선인 일본의 제18 부사산호가 북한해안에 정박해 있을 때 민씨는 헤엄을쳐서 이 배에 잠입, 일본으로 갔다.
일본정부는 불법 입국죄를 적용, 그를 3년3개월째 수용소에 억류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민씨의 송환을 요구하면서 그 해 11월15일 다시 북한에 간 부사산호의 선장과 기관장에 간첩죄를 씌워 20년형을 선고, 복역시키고 있다.
이것은 김만철씨 사건을 계기로 일본언론들이 거론함으로써 새로 문제가 됐다. 그동안 북한은 민씨를 송환하면 복역중인 두 선원을 석방할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일본정부에서는 법무성이 민씨의 석방을 주장하는 반면 외무성은 외교적인 미묘성을 이유로 석방보류를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언론 일각에서는 김만철씨 일가를 한국으로 가게 한 것처럼 민씨를 제3국(친북한국가)을 거쳐 북한에 돌려보내고 일본인 선원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와 언론은 인도주의 원칙과 국제관례를 들어 민씨를 조기 석방하되 행선지 결정은 그의 자유의사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씨는 일본도착이후 일본·미국. 한국을 지칭하면서 어디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보내 줄 것을 요구하다가 최근엔 한국을 최종 행선지로 결정하고 조기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주장은 분명하다. 민씨는 즉시 석방돼야하며 그는 그의 선택대로 한국으로 보내져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우리의 논리는 간단하고도 자명하다.
첫째는 인류사회의 가장 고귀한 행동원리인 인도주의 원칙이다. 민씨는 자유를 찾아 탈출했고, 북한으로 송환되면 처형될 것이 확실하다.
둘째는 국제법과 국제관례다. 민씨는 공적 신분을 가진 북한의 구성원이다. 그가 가혹한 전체주의적 공산체제를 거부하고 그 반대형 체제를 찾아 탈출한 이상 그는 정치망명, 또는 그에 준하는 처우를 받아야 한다.
셋째는 일본의 국가이념이다. 일본은 명백히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이를 내외정책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 모든사회에 자유의 원칙, 민주주의의 정신을 널리 확산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해야 한다.
넷째는 일본 정책의 계속성 동일성문제다. 지금까지 일본은 공산체제를 탈출한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었다. 미그-25를 몰고 온 소련의 「벨렝코」중위나 김만철씨 일가의 예가 그것이다.
인도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국제법 주체인 일본이 억류중인 자국선원을 구출키 위해 타국의 시민을 제물로 삼아 민씨를 북한에 보낸다면 그것은 일본의 자기부정이며 결코 문명국이 취할 길이 아니다.
인명은 결코 흥정의 제물이 될 수 없다. 더구나 도덕적 원칙과 국제법 질서를 무시한 반문명의 북괴공산집단과의 그같은 흥정은 도덕과 법률의 패배일 뿐 아니라 일본과 전체 자유세계의 투항임을 일본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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