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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침묵 … 청와대 “민심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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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6 면

청와대는 12일 수석비서관들이 전원 출근한 가운데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촛불시위 대책회의를 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의 준엄한 뜻을 받아들여 겸허하게 민심을 듣겠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며 “법에 보장된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조속히 정국을 수습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서울 광화문광장 등 시내 곳곳에 100만 인파가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쳤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별도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했다. 다만 전날 정연국 대변인을 통해 “세월호 사고 당일 성형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은 유언비어”라며 해명에 나선 걸 두고 “대통령 본인에 대한 의혹에 해명을 쏟아낸 것은 그만큼 대통령을 향한 민심이 위중한 상태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주변에서 나왔다.


지난주 국회에 책임총리 추천을 요청한 박 대통령은 지난 7~9일 종교계 지도자들과 연달아 면담을 했다. 박 대통령과 만난 한 종교계 인사는 “밖은 영하 10도인데 청와대는 영상 10도인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대통령이) 장기전을 준비하면서 나름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도 했다. 현재로선 국민의 퇴진 요구나 야당의 2선 후퇴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여권 일각에서도 최순실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이 야당 요구에 조금씩 양보하면서 공세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지지층 재결집을 도모할 시간 벌기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사상 최대 규모의 인파가 모인 12일의 촛불시위가 향후 대통령의 거취 고민을 더하게 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여권 관계자들은 박 대통령이 매우 침통한 상태에서 정국 수습을 도모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12일 “최순실 사태 이후 대통령도 그동안의 인간 관계에 대해 매우 후회하고 있다”며 “사실상 행정수반 역할은 포기한 상태고, 울타리 역할을 해 줄 당이 계파 갈등으로 허물어지지 않기만 바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지난 7일 “박 대통령을 도울 수 있도록 조금만 위기 관리의 시간적 여유를 허락해 달라”며 대표직 사퇴를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란 설명이다.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선 대통령이 여론 반전 카드로 3차 대국민담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만약 3차 담화를 한다면 야당이 원하는 2선 후퇴와 관련한 진전된 언급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야당이 받아들이면 여야 영수(領袖)회담을 개최하고, 책임총리 지명과 내각 인선을 마무리하는 것이 청와대가 바라는 수습 방향이란 의미다. 박 대통령이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하고,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한 것은 외치(外治)는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박 대통령은 공식 일정을 최소화한 채 ‘칩거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과 만난 종교계 인사는 “박 대통령이 예상과 달리 상당히 밝은 표정과 맑은 눈이었다. 그래서 ‘잠은 잘 주무시나 봅니다’고 인사말을 건넸더니 미소를 지으며 ‘잠이 보약이에요’라고 하더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최선욱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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