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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생명친화적 환경 만든 물리적 메카니즘 밝혀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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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27면

DESI 망원경과 우주배경복사 비등방 지도.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에는 생산성이 향상되면 그만큼의 이윤을 기대할 수 있었다. 기술의 발전과 이익의 창출은 마치 동일한 개념인 듯 상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진화에는 변곡점이 있다. 생산성이 향상되면 재화를 만들어내는 데 소요되는 추가비용이 낮아진다. 생산기술이 극단적으로 발전할 경우, 한계비용이 작아지면서 이윤도 사라지는 현상이 올 수 있다.


전체적인 소득이 줄어들면 시장의 구매력에 위기가 온다. 가까운 미래에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본소득 보장 같은 낯선 정책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들이 나온다. 스위스가 처음으로 모든 국민에게 매달 300만원을 지급한다는 기본소득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부결되었지만, 유사한 정책들이 중단 없이 세계 곳곳에서 기획되고 있다. 기본소득 보장이 쉽게 정착되지 못한 이유는, 사람들이 이 제도를 복지정책의 연장선에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복지정책이 아니다. 미래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받아들여지기 시작할 것이다. 기본소득을 넘어, 사람들은 점차 광장에서 소득과 소비를 함께 지워버리고 공유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미래 사회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아닌 변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탐욕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미래의 소비는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는 통화의 총량이 아닌, 지구라는 자연 공간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총 에너지에 의해서 제한될 것이다. 인터넷이 발전한 현대의 통화 순환 구조를 보자. 아주 짧은 순간에 생산에 대한 투자, 소득으로의 전환, 시장에서의 소비 그리고 다음 투자를 위한 통화 회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자연의 에너지 순환 스케일로 커지게 되면, 이러한 선순환에 소요되는 시간이 특정 경로에서 지체될 수 있다. 이 길목에서 인간이 마주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이다. 지금까지의 환경오염이 해변으로 밀려드는 밀물이었다면, 극단적인 생산성의 향상이 가져오는 위와 같은 미래 사회의 환경오염은 쓰나미처럼 지구를 덮칠 것이다.

태평양의 쓰레기섬.

[기초과학은 파멸 막는 대안 찾기에 나서야]이 시대의 기초과학은 생산성 향상에 대한 공헌보다는 파멸에 이르는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일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현대 천문학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이 칼럼을 통해서 써보았다. 본 칼럼의 첫 글에서 그 해답이 우주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를 동기화할 수 있는 연결고리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이 우주가 빅뱅에서 시작했다는 이론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가 찾고 있는 우주의 초기 조건은 빅뱅이 아니고, 빅뱅 이후에 있었던 급팽창이다. 우주의 급팽창은 그 이전의 역사를 모두 지워버리고 이 우주를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만일 빅뱅 이후 초기의 급팽창이 없이 우주가 진화했다면, 이 우주는 아무런 구조물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급팽창 시기에 만들어진 초기 조건에는 오늘날의 생명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초기의 급팽창을 입자표준모형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거의 모두 실패했다. 이 급팽창을 설명하는 수백 개의 이론들이 있지만, 모두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상의 입자가 없이는 급팽창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인플라톤이라고 불리는 미지의 입자가 무엇인지, 어떤 원리로 이 우주가 생명 친화적인 공간으로 변화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결국, 지금까지 제안된 수백 개의 우주 초기 모형 중에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측이 필요하다. 천년이 지난 유적을 복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유적이 자그마치 137억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면 얼마나 어려운 복구 작업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급팽창 이론이 처음 제안된 것은 1980년께였고, 10년이 지난 1990년께에는 급팽창이 정말 생명의 기원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를 검증할 수 있게 된다.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얼음 속에서 보존되고 있던 과거의 바이러스들이 깨어나고 있다. 빙하기 초기의 바이러스가 동면 기간 동안 보존되다가 얼음이 녹으면서 세상에 다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과론적인 거리 밖에서 137억년 동안 얼어 있다가, 이제 막 우주 지평선 안으로 들어오는 우주 초기의 흔적이 있다. 우주론자들은 급팽창에서 생명이 태어날 수 있는 공간이 시작된 것이면 이 흔적에서 관측되는 비균질도가 정확히 10만분의 1이어야 한다고 예측했다. 1992년 우주배경복사탐사위성(COBE)은 놀랍게도 이론 우주론자들이 예측한 이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비균질도를 발견한다. 이것은 우주의 초기 조건과 현재의 생명 존재 조건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제 남은 작업은 어떤 원인에 의해서 급팽창이 일어났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미래 광시야 관측에 도전하는 우주론자들

[급팽창 원인 알려면 초기 중력파 찾아야]하나는 우주 초기의 중력파를 찾는 일이다. 윌킨슨 마이크로파 비등방성 탐색기(WMAP), 플랑크(Planck)위성 그리고 바이셉(BICEP) 망원경 등의 우주배경복사 실험이 초기 중력파를 발견하기 위한 실험을 시도했지만, 아직 성과가 없다. 2004년 WMAP 에서 2013년 플랑크로 이어지면서, 우리는 초기 중력파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씩 낮아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2015년에 BICEP이 초기 중력파를 발견했다고 했을 때, 전방 노이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주론자들은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들처럼 오류의 가능성을 무시했다. 결국, 초기 중력파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초기 비균질도의 확률분포 이상 현상을 찾는 일이다. 아주 미세하기는 하지만 급팽창 이론들마다 다른 확률분포 이상 현상을 예측하고 있다. 만일 이 이상현상을 정밀하게 관측하게 된다면, 급팽창이 일어난 원인을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검증을 위해서는 가능한 넓은 우주에 분포한 은하를 관측해야 한다.


이 확률분포 이상현상을 정밀하게 관측하기 위해서는 우주 전 공간에 존재하는 우주거대구조를 관측해야 한다. 이 우주거대구조는 은하의 분포를 관측하게 되면 알 수 있다. 이 은하 관측은 1980년대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연구소(CfA) 연구진이 시작했다. 당시에 관측한 1000여 개의 은하의 분포에서 우주가 텅 빈 거품 주위의 필라멘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주의 장벽이 처음 발견되기도 한다.


통계의 정확도는 모집단의 크기에 의해서 결정된다. 우주에서 의미 있는 통계값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 10만개 정도의 은하 모집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은하 하나의 위치를 알기 위한 분광에 소요되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2000년대까지도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2000년대가 되면 동시에 여러 개 은하를 분광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 드디어 은하분포의 통계적인 특성을 알 수 있는 2dF 및 SDSS 등의 실험이 가능해 진다.


이제 2016년 시점에서는 3000만 개의 은하를 관측할 수 있는 DESI 같은 실험도 기획되고 있다. 2019년 시작되는 새 관측을 준비하기 위해서 국제적인 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관측 실험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초기 급팽창의 기작을 규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관측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에 이러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우주론 연구그룹이 형성됐고, 2023년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제 장기 연구 계획을 시작하면서 연구제안서를 작성할 때의 자신감보다는, 목표한 성과를 반드시 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새로운 발견, 자연 파괴 멈출 수 있는 계기]2020년대 초에는 현재 기획되고 있는 여러 관측 실험에서 지구상에서 알려져 있는 기초과학과 관측된 우주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중요한 발견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이 발견들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우주와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첫걸음은 현재의 우주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생명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낸 물리적인 기작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초기 기작에서 시작하여 우주의 진화과정을 지배한 암흑물질 및 암흑에너지의 정체까지 규명하게 되면, 천문학과 생명이 만날 수 있는 다음 세대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우주에서는 필연적으로 동시 다발적인 생명의 탄생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외계의 생명과 반드시 조우할 것이다.


이러한 발견들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탐욕에 의한 자연의 파괴 앞에서, 인간이 잠시라도 자연 앞에서 멈출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은 중세의 어둠을 빛으로 인도하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하늘의 운행을 밝히는 것 자체가 새로운 사회구조를 형성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새로운 세상으로 움직인 것이다. 이제 인간이 파멸을 멈추고 절제하는 공유의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천문학적 발견을 하는 순간을 꿈꿔본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참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린다.


송용선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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