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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춤의 전설, 젊은 피로 부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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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30면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Soul, 해바라기’가 5년 만에 돌아온다. 2006년 당시 배정혜 예술감독의 안무작으로, 초연 이후 2011년까지 꾸준히 사랑받으며 평균 객석 점유율 90%를 기록했던 인기작이다. 2010~11년 한국 창작춤 최초로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서 개런티를 받고 공연돼 전석매진을 기록하며 세계 무용계에서 인정받은 ‘원조 춤 한류’이기도 하다. 초연 10주년을 기념한 이번 앙코르 공연은 안무는 물론 무대·조명·캐스팅 등에서 한층 세련미를 더했다.


10년 전 작품이지만 올드한 무대는 아니다. 사실 ‘Soul, 해바라기’는 우리 전통 춤과 음악이 재즈 라이브 연주와의 만남을 처음으로 시도했던 앞서간 콜라보 무대다. 또 한국 창작춤의 세계화를 위해 기획된 선구적 작품인 만큼, 한국 무용이 세계 춤시장 한복판에 진출해 주목받고 있는 지금 재공연을 통해 우리 창작춤의 혁신과 파격의 역사를 새삼 돌아보는 의미도 있겠다.


종종 무용극으로 불리나 스토리라인이 있는 건 아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그리워하는 어머니’라는 상황과 정서만 있다. ‘진도아리랑’ ‘강강술래’ ‘새타령’ 등 우리 민요를 편곡한 독일의 재즈 앙상블 살타첼로의 서정적인 선율이 그리움을 자아내면, 서로를 향한 그리움에 몸부림치는 어미와 아들의 질긴 인연의 끈이 무대를 휘저으며 때론 쓸쓸하고 때론 격정적인 그림을 그린다.


1막에선 첼로와 비올라 솔로에 맞춰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살풀이춤이 절제와 분출을 오가며 어머니와 아들의 애틋한 마음의 교차를 본다. 죽음이 갈라놓지 않더라도 모든 어미는 언젠가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과정을 겪고, 자식도 어머니로부터 떠나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통과 의례와도 같은 이별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그리움의 정서가 객석에 잔잔히 스며든다.

2막은 별신굿처럼 다양한 순서가 이어지는 축제 한마당처럼 전개된다. 무당이 불러낸 혼령들이 이어가는 역동적이고 유머러스한 군무에는 슬픔을 넘어 죽음을 해학적으로 바라보는 우리 민족 특유의 시선이 담겨져 있다. 제사에 올리는 북어를 소품으로 활용한 북어춤, 궁중 음악의 아박(牙拍)을 박력 있게 활용한 아박춤, 무당의 움직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부채방울춤 등 다양한 군무 퍼레이드가 마치 발레의 디베르티스망처럼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리고 마침내 플라멩코와도 같이 격정적 솔로를 추는 신들린 무당에게 빙의된 아들이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오는 클라이맥스다. 비올라와 색소폰 솔로가 교차되는 가운데 붉은 탯줄과도 같은 인연의 끈으로 이어진 어머니와 아들은 과연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누구라도 모든 걸 잊게 될 것 같다. 한참을 엇갈리다 기어이 서로를 붙잡고 세상 가장 그리운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는 순간, 가슴 깊이 묻어둔 원초적인 정서가 속수무책으로 끓어올라 넘쳐 버리는 것이다. 모자의 한(恨)이 후련히 풀리고 나면 갑자기 무도장에라도 온 듯 다함께 웃고 즐기는 ‘소주파티’가 열리고, 꽃가루 속에서 경쾌한 부채춤 군무로 막을 내린다. 삶과 죽음이 뭐 별거냐는 듯.


이 무대의 특별한 감동은 독일 음악가 페터 쉰들러가 우리 민요를 모티브로 작·편곡한 음악의 힘이 크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감성적으로 풀어내는 살타첼로 멤버들의 연주가 흡사 마약과도 같이 그리움을 자극하는 것이다. 2009년과 2010년 공연에서는 함께하지 못했던 이들이 오랜만에 함께 무대에 오르고, ‘더블베이스의 황태자’ 성민제도 합류해 새로움을 더한다.


유럽 최고의 조명 디자이너 미키 쿤투가 변화시킬 무대도 기대감을 높인다. 지리 킬리안·아크람 칸·카롤린 칼송 등 유명 안무가와 작업해 왔고, 특히 2014년 국립무용단의 화제작 ‘회오리’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의 강렬한 빛의 마법이 ‘Soul, 해바라기’ 10주년에 또 어떤 스펙터클을 더해줄지.


과거 국립무용단의 간판스타들이 맡았던 주요 배역에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젊은 무용수들이 새롭게 캐스팅된 것도 관전포인트다. 에너지 넘치는 선 굵은 춤을 보여주는 무당 역의 황용천, 섬세하고 부드러운 춤이 특기인 아들 역의 조용진이다. 특히 여성 무용수가 춤췄던 무당을 성별을 교차시켜 남성 무용수에게 춤추게 한 것이 눈길을 끈다. 여자 무당의 농염함과 격정을 대신해 남성 춤의 스케일과 박력이 작품 전반의 기운을 확 바꿔놓을 지도 모를 일이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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