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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미국] 여심 훔친 ‘일하는 엄마’ 이방카, 성추문 진화한 일등 공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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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트럼프 캠프에서 활약한 이방카.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막후 실세’가 될지 주목된다. [AP=뉴시스]

트럼프 캠프에서 활약한 이방카.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막후 실세’가 될지 주목된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의 ‘최종 병기’ 장녀 이방카(35)가 통한 걸까. 선거 전날인 지난 7일 뉴햄프셔주 맨체스터 유세장 연단에 오른 트럼프의 오른쪽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후보가, 왼쪽에는 딸 이방카가 서 있었다. 트럼프의 다섯 자녀 중 가장 총애를 받는 이방카는 대선 기간 선거 캠프의 막후 실세로, 위기의 순간에는 구원투수로 뛰며 킹 메이커 역할을 제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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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는 자신의 선거 캠프를 이방카와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차남 에릭 등 가족들로 채웠다. 본업인 부동산 개발사업을 ‘가족 경영’ 해왔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 5번가의 트럼프 타워 26층은 트럼프 가족이 핵심 전략 회의를 하는 장소였다. 대중 인지도가 높은 이방카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육아수당·출산휴가 공약 만들어
트럼프 비호감 이미지 완화 역할
루언다우스키 경질 이끈 캠프 실세
“공직 출마 뜻 없다” 평소 선 그어
인수위 특별보좌관, 참모 가능성

트럼프의 자녀 육아수당에 대한 세금 공제, 6주간의 유급 출산휴가 공약은 이방카의 작품이었다. 이방카는 ‘모성’이라는 제목의 대선 TV광고에도 직접 출연했다. ‘일하는 엄마’ 이미지로 여성 표심을 공략하려는 전략이었다. 트럼프의 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공화당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이 이방카를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적임자다. 인상적인 면모가 있다”며 치켜세울 정도였다.

트럼프의 둘째이자 맏딸인 이방카는 1981년 맨해튼에서 첫 번째 부인 이바나와 트럼프 사이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부모의 이혼을 겪었지만 트럼프가 공식 석상에 자주 동반시켰다고 한다. 17세이던 97년 잡지 ‘세븐틴’의 모델로 데뷔해 미스틴 USA에도 출전했다. 이후 베르사체·토미힐피거의 모델로 활동했다.

이방카는 맨해튼에서 초·중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조지타운대를 2년 다니다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후 트럼프그룹의 인수개발부문 부사장직을 맡는 등 실전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동시에 본인의 이름을 딴 주얼리·패션 브랜드도 운영 중이다. 2006년엔 아버지가 출연했던 TV쇼 ‘어프렌티스’에도 출연했다. 2009년 10월 유대계 부동산 개발업자 재러드 쿠슈너(35)와 결혼하면서 유대교로 개종했고 세 자녀를 낳았다.

선거 국면에서 이방카의 주된 역할은 트럼프의 비호감 이미지를 상쇄시키는 것이었다. 이방카는 트럼프의 대권 출마 선언 이후 주요 유세 현장을 따라다녔다. 트럼프의 세 번째 부인이자 퍼스트레이디가 될 멜라니아가 ‘조용한 내조’를 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유세 현장에서 이방카가 착용한 가방과 구두·드레스는 매번 주목을 받았다. 7월 21일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식 때 입고 나온 연한 핑크빛 드레스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 이방카는 “아버지는 사업에서 인종과 성별을 따지지 않으며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인지를 중시한다”는 연설로 트럼프의 여성·소수자 비하 이미지를 씻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방카는 대회 직후 트위터에 자신의 패션 브랜드 ‘이방카 트럼프 라이프스타일 컬렉션’ 링크를 올리고 “이 옷을 사라”고 홍보했다. 138달러(약 15만원)짜리 이 드레스는 불티나게 팔렸다. 급기야 “이방카를 닮고 싶다”며 성형수술을 받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이방카가 트럼프 캠프의 실세라는 게 알려진 건 올해 6월 코리 루언다우스키 선거대책본부장 경질 사건 때였다. 트럼프는 루언다우스키가 부적절한 언행 등으로 물의를 빚자 그를 전격 해임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트럼프의 ‘문고리 권력’이자 최측근인 루언다우스키를 축출하는 데 이방카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보도했다. 루언다우스키가 이방카의 남편 쿠슈너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다닌 게 알려지자 이방카가 아버지에게 ‘결단’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루언다우스키는 선거 캠프를 나간 이후에도 “트럼프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지난달 중순 3차 TV토론 이후 터진 성추문으로 지지율이 추락했을 때도 이방카가 전면에 나섰다. 이방카는 공화당 여성 의원들과의 만남과 TV 인터뷰 등을 통해 “아버지의 발언이 명백하게 부적절하고 공격적이었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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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트럼프 내각의 구성원으로 이방카가 재등장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방카는 “아버지가 당선되더라도 공직에 출마할 뜻이 없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하지만 정권인수위원회 구성 과정 등에서 특별보좌관으로 참여하거나 막후 참모로 ‘가족 정치’를 이어갈 가능성은 남아 있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이방카의 남편 쿠슈너에게 맡겼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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