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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퍼트는 제 맘대로, 원준 형은 내 뜻대로 볼배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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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두산 포수 양의지가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사진 조문규 기자]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두산 포수 양의지가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사진 조문규 기자]

프로야구 두산이 2016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KS) 통합우승을 이뤄낸 건 니퍼트(35)·보우덴(30)·장원준(31)·유희관(30) 등 강력한 선발투수들 덕분이었다. 이들의 능력을 100% 이끌어낸 숨은 주역이 포수 양의지(29)다. 안정된 수비와 화끈한 타격을 뽐낸 양의지는 KS 최우수선수(MVP·77표 중 70표)에 뽑혔다. 수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그를 9일 오후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만나 소감을 들어봤다.

두산이 NC와의 KS 4연전에서 전승을 거두는 동안 양의지는 타율 0.438(16타수 7안타)·1홈런·4타점으로 활약했다. 선발투수들이 각각 1승씩 거둔 채 KS가 끝나 MVP 투표에서 양의지에게 표가 몰렸다. 양의지는 “2013년 1승3패에서 삼성에 역전당한 적이 있어서 4차전에 끝내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4차전에서 끝내지 못했다면 (5차전 선발 예정이었던) 니퍼트나 (시리즈 내내 잘 쳤던) 허경민이 MVP가 됐을 것”이라며 웃었다. KS 개막 이틀 전 조모상을 당했던 양의지는 “빈소인 광주를 다녀오느라 몸살이 났다. 큰일났다 싶었는데 경기가 술술 풀렸다. 하늘에서 할머니가 도와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시리즈 MVP 양의지 인터뷰
KS 이틀 전 조모상 치르며 몸살
하늘서 할머니가 도와주신 것 같아
쪼그려 사는 포수 생활 힘들어
아들 태어나면 투수 시키고 싶어

양의지의 별명은 ‘곰의 탈을 쓴 여우’다. 포수 선배이자 두산 사령탑인 김태형(49) 감독은 “양의지는 머리가 워낙 좋은 포수다.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칭찬했다. 양의지는 쑥스러워하며 “감사한 말씀이지만 난 7점 정도 한 것 같다. 운이 좋았고, 긴박할 때 강인권 배터리 코치님의 조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2년 전 두산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양의지에게 “누가 뭐래도 네가 두산의 주전 포수다. 책임감을 가지고 투수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양의지의 입지가 불안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양의지에게 강한 신뢰를 보냈다. 그가 팀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김 감독은 “언젠가부터 양의지가 투수에게 공을 잘 닦아서 건네주더라”며 껄껄 웃었다. 양의지가 사소한 일에도 정성을 쏟고, 동료를 배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의지는 “감독님이 선수들을 편하게 해주신다. 그러나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다 지켜보신다”며 “감독님이 내게 (투수 리드에 관련해) 많은 부분을 맡겼다. 그만큼 내가 더 공부하고 준비해야 했다. 덕분에 2년 동안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웃고 계셔도 감독님은 무서운 분이다. 선수들끼리 친하면서도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두산이 강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개성이 강한 선발투수들을 양의지는 어떻게 리드할까. 양의지는 “니퍼트는 주관이 뚜렷하다. 의견이 부딪힐 땐 니퍼트가 원하는 공을 던지도록 한다. 처음에는 안 맞는 부분이 많았지만 점점 호흡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원준이 형과 (유)희관이 형은 내게 맡기는 편이다. 보우덴은 다혈질 기질이 있어서 (경기 때는 기분을 맞춰주고) 경기가 끝난 뒤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설명했다.

두산의 2년 연속 KS 우승을 이끈 양의지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포수가 됐다. 그는 “초등학교 때 팀에 포수가 없었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 포수를 했는데 여기까지 왔다”며 “포수는 쪼그려 앉아야 하는데 그래서 투수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포수를 하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생후 2개월 된 딸을 둔 그에게 “아들을 낳으면 포수를 시키겠느냐”고 묻자 “야구를 하는 건 좋은데 포수를 하겠다면 말리고 싶다. 아들이 공을 던지고 내가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의지는 내년 3월 열리는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뽑힐 가능성이 크다. 그는 “국제대회에서 못하면 욕을 먹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 하지만 국가대표는 모든 선수의 꿈이다. 몸을 잘 만들어서 대표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글=김효경·김원 기자 kaypubb@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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