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기막힌 우연이 반복되는 CJ의 문화 사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기사 이미지

장주영
산업부 기자

우연이 반복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우연으로 위장한 것은 아닌지 하고. CJ 그룹이 진행 중인 문화 사업이 그렇다.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한류 문화 행사인 K콘 등 펼치는 사업마다 최순실씨의 흔적이 짙게 배어난다.

CJ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 뛰어들어 1조원이 넘는 투자 계획을 실행 중이다. 이 사업은 최씨와 측근 차은택씨가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서울 상암동 CJ E&M 본사에서 열린 문화창조융합벨트 출범식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이날 CJ E&M은 경기도 고양관광문화단지(한류월드)에 1조4000억원 규모의 한류 테마파크 ‘K컬처밸리’를 조성하는 투자의향서(LOI)를 경기도에 제출도 했다.

K컬처밸리는 창조융합벨트사업의 주력 사업이다. 10년 넘게 사업자를 찾지 못하던 ‘한류월드’ 부지에 CJ가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했다. CJ 관계자는 “원래 테마파크 사업에 의지를 갖고 있었는데 마침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요청이 왔다”고 말했다. 딱 필요한 시점에, 꼭 맞는 사업 아이템을 정부가 제안했고 CJ는 기꺼이 지갑을 열어 1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게 됐다는 얘기다.

기사 이미지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우연은 또 있다. CJ E&M이 주관하는 한류 문화행사 K콘은 2012년부터 미국·일본 등지에서 개최되다 올해의 두 차례 행사는 무대를 옮겼다. 3월엔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행사가 열렸는데, 당시는 UAE에 한국문화원이 설립된 시기다. 이 한국문화원 설립을 주도한 게 또 최씨다. 6월 파리 K콘 행사는 마침 박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시기와 겹쳤다. 행사장에는 미르재단이 운영하는 한식 부스가 마련됐다. 행사의 프랑스 개최-박 대통령의 방문-미르재단의 참여로 이어지는 우연의 연속이다.

CJ가 최씨와 차씨가 기획한 정부 사업에 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걸까. CJ는 “문화·콘텐트 사업이 주력이기에 정부와 이해관계가 맞았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그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든 정황이 속속 드러난다. 3일 MBN이 공개한 녹취에 따르면 2013년 말 청와대의 한 수석이 CJ 고위 관계자에게 ‘VIP(대통령)의 뜻’이라면서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종용했다. 당시는 이재현 회장이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다. 녹취가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직접 오너 일가의 경영 일선 후퇴를 지시한 것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2014년 10월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돌연 출국한 후 경영 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CJ가 자발적으로 정부 사업에 참여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CJ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면 용기를 낼 필요도 있다. 그 솔직함을 이해해줄 국민도 꽤 있지 않을까.

장주영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