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취재일기] 창조경제가 실패한 진짜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6.11.03 01:00

업데이트 2016.11.0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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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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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아
경제기획부 기자

지난 대선 때 정치부에서 취재를 하며 소위 친박 핵심 인사에게 물었다. 창조경제가 뭐예요. 처음엔 전통산업과 최신기술을 결합한 ‘스마트 뉴딜(Smart New Deal)’을 한국말로 푼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하니 GPS기술로 내비게이션 산업을 키운 게 바로 창조경제라고 했다. 며칠 뒤 다시 물으니 헛개나무를 키우는 농가가 대기업 숙취음료에 원료를 공급하는 게 창조경제란다. 이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창조경제의 성공사례로 굳어졌다.

경제민주화 공약 중 하나였던 기초연금도 마찬가지다. 선거 전엔 65세 이상 노인에게 무조건 20만원씩을 준다고 했다가 선거 후 재원문제에 부딪혔다. 이때도 담당자들은 “원안에서 많이 바뀌어서 논의가 필요하다”,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지금 해외에 있는 OO가 만든 거다” 등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실제로 답이 없었던 것 같다. 최근 JTBC가 입수한 최순실 파일 중에 ‘고용복지업무보고 참고자료(2013년 1월 28일)’가 그 증거다. 이 문서는 기초연금안에 대해 “1안은 국고 부담이 커질 수 있고, 2안은 노인세대에게 기초연금을 주려고 국민연금을 끌어다 쓴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빨리 최종안이 결정되도록 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기본 계획과 설계도 없는 공약이 대선에서 노인층 표를 한껏 끌어모은 셈이다.

때때로 정부가 그토록 일관되게 강조해 온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가 집권 4년차가 다 되도록 왜 와 닿지 않는지 궁금했었다. 돌이켜보니 애초에 명확한 개념이나 계획,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슬로건과도 같았던 ‘원칙과 신뢰’가 없었다.

기업과의 관계만 봐도 그렇다.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해 대기업들에게 사실상 ‘강제모금’을 한 정황과 진술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몇 군데 물어보니 “우리만 (모금에) 빠져서 찍히면 어떡하나”(A기업), “스포츠 인재 육성을 위해서라는데 안 낼 명분이 없었다”(B기업), “OO억을 내라길래 좀 깎아달라, 다른 기업과 나눠서 내겠다고 했더니 낯빛이 싹 바뀌더라(C기업)” 등의 얘기가 쏟아졌다. 특히 정부는 SK·롯데·CJ 등에는 기업의 아킬레스건인 오너 리스크를 교묘히 악용했다. 돈 내는 기업들이 이걸 몰랐겠나. 겉으론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면서 아픈 곳을 찔러 ‘삥 뜯기’에 가까운 갹출을 하는 정부를 누가 존중할 수 있을까. 수년간 나라 경제가 어려운 근본 원인은 국회에 계류 중인 경제활성화법 때문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린 탓이다.

이소아 경제기획부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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