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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대우조선 영구채 인수 관련 논란

중앙일보

입력

수출입은행이 1조원 가량의 대우조선해양 영구채 인수를 추진하기로 한 것을 두고 금융권에서 적절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부실기업이 자본확충을 위해 발행하는 영구채를 국책은행이 사 주는 건 기업 구조조정에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부실기업 목숨 연장 수단으로 영구채 발행을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구채는 발행 회사가 원금 상환 만기를 무기한 연장할 수 있는 채권이다.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되는 채권인 셈이다. 투자자에겐 이자만 지급하면 된다. 재무제표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기록돼 발행회사 입장에선 자본확충 효과가 있다.

수출입은행의 대우조선 영구채 인수 추진은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대우조선 자본확충 계획의 일환이다. 애초 금융당국은 수은에 출자전환을 요청했다. 수은의 대우조선 대출금(1조6000억원)을 주식으로 바꿔달라는 얘기다. 그러나 수은이 “주주보다는 채권자 입장에서 자본확충에 참여하고 싶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영구채 인수다. 출자전환 대신 기존 대출금 전부 또는 일부를 영구채로 바꾸는 형태다.

문제는 발행 주체인 대우조선이 투기등급(한국신용평가 기준 B+)인데다 완전자본잠식 기업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영구채를 발행한 기업은 대부분 일시적인 자금이 필요했을 뿐 재무상태나 신용도는 양호했다. 최근 5년간만 봐도 두산인프라코어ㆍ포스코ㆍ현대중공업 등 주요 영구채 발행기업의 신용등급은 발행 당시 A~AAA등급 이었다. 올해 초 자금난에 빠진 한진해운이 영구채(2200억원)를 발행했지만 이는 대주주인 대한항공이 전액 인수했기 때문에 시장 투자자가 인수하는 다른 영구채와는 성격이 달랐다.

그동안 영구채 발행에 부정적이던 금융당국이 대우조선의 자본확충을 위해 영구채 발행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도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012년 두산인프라코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영구채 발행을 추진할 때 자본이냐, 부채냐 논란이 일자 “부채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자본으로 인정할 경우 영구채가 부실기업 부채 은폐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자본으로 인정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으면서 금융위는 반대 입장을 접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은의 영구채 인수는 장부상 자본만 늘리는 어정쩡한 우회 수단”이라며 “대우조선을 살리겠다는 확실한 의지가 있다면 정정당당하게 출자전환을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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