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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없는 진행으로 안정된 내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예심을 거쳐 온 응모작들을 세 선자들이 다시 추려 돌려본 뒤 합식에서 논의된 작품들은다음 네 편이다. 『낮 달』(이순원), 『마디』(구효서), 『시간의 덫』(정휘문), 『술래의 잠』(백금남).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폭력과 그 폭력을 옹호해야 하는 양심의 괴로움을 그리고 있는 『낮 달』은 그 도전적 주제와 지적 성찰에 있어, 그리고 진지한 작가적 활동 가능성의 기대에 있어 가장 큰 호감을 샀지만 사진병-기합-신부의 설교의 동기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특히 행위 대신에 강론으로 처리하여 소설적 구조가 약화된 것이 흠이었다.
『시간의 덫』은 장모-아내-딸과 환자 자신으로 이어지는 업의 순환을 우리의 현대사적 고난과 연결지음으로써 오히려 덧나는 상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냉정성을 잃지않는 튼튼한 문장력과 구성의 힘이 돋보였지만 응모 규정을 두배나 넘는 길이, 그 길이에 어울릴 사건 전개의 단조로움, 그리고 딸의 발병에 대한 근거 부족이 작품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소경이 자기를 쫓아낸 고향으로 찾아간 며칠의 일을 기록한 『술래의 잠』은 주관적인 문체가 치기로 흘러가며 스토리 진행에 자연스러움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소경임에도 그의 시선은 정상인처럼 주위를 묘사한다는 미숙성을 숨기지 못하고있다.
당선작으로 결정한 『마디』는 이상의 다른 작품들이 지닌 결점들을 걷어낸 무리없는 진행과 현재적 시각, 내면의 심리적 기미에 대한 섬세한 포착으로 상당히 안정된 능력을 갖춘소설이었다.
그러나 그 안정되었음이 이 작품을 구태여 상투성으로 잦아든 미흡감을 선자들에게 안겨주었다. 새로운 작가를 선발하기로 한 선자들의 합의는 따라서, 환호로서보다는 격려로서 받아들여져야 할것이며 이것은 다음의 응모자들에게도 참작해야 할 충고가 될 것이다. 심사위원 이청준·이문구·김병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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