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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문화계를 결산한다 문화부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문화현상을 시간의 마디를 따라 재단하긴 어렵지만 86년 한해의 문화계를 결산해볼 시기가 됐습니다. 올해의 문화계는 각 분야에서 새로운 성과와 바람직한 경향도 적지않았지만 충격적인 사건이나 문제점도 많았던것 같습니다. 86아시안게임을 전후해 펼쳐진 문화올림픽은 모처럼 우리문화 역량을 총집결, 오늘의 한국문화 현주소를 가시적으로 계량할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요. 그러나 국가 현실을 비판하는 종교계 일각의 잦은 시국발언, 이념서적 파동과 관련한 출판인의 구속사태, 민중미술 벽화사건등 예년에 없던 충격적인 사건과 문제점도 많았습니다. 올해의 문화계를 문제점·사건·업적등을 중심해 간략히 조명해 보도록 하지요.
모두 32개의 문화예술행사를 걸친 86아시안게임 문화 축전은 가슴 뿌듯한 성과도 많았지만 여러가지 문제점과 반성해야할 점들을 드러내기도 했읍니다.
두차례의 문화축전 평가세미나를 통해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규모에만 치중, 겉으론 「화려함」을 보여주었으나 우리문화의 진수를 드러내는 질적인 추구에서는 미흡했다는거지요.
하지만 86아시안게임의 개폐회식을 장식한 무용은 페회식의 경우 전통 민속춤『강강수월래』가 시작되자 무용단·선수·임원이 한데 어우러지는 춤판을 벌여 장관을 이루기도 했지요.

<서점주인에도 보안법>
대량의 이데올로기 서적등의 압수와 출판인 구속사태를 몰아온 이른바 금서파동은 문화계의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수 있지요. 정부당국은 올해의 압수서적 종수를 50종이라 밝히고있으나 출판계측은 70여종 5천여권으로 집계하고고 있음니다.
서적압수뿐 아니라 파동과 관련한 인신구속도 않았던것 같은데….
출판사대표 7명과 서점주인 3명이 구속돼 「국가보안법」 을 적용 받았음니다.
서점주인에게 까지 국가보안법을 적용한것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당국의 사법적 대응이 아주 예민해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여기에 더하여 외국인저작권보호를 전제로 내년 7월부터 실시될 저작권법개정은 출판계에 또하나의 파문을 던졌습니다. 외국저작물에 대한 전반적인 보호는 이제발등의 불로 다가왔지요.
올해도 전국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출판등록 규제를 물지 못한것은 아쉬운 숙제로 남았군요. 출판하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는 조치가 하루빨리 취해져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있어요.
천주교 김수환추기경은 지난8일의「인권회복 미사」강론에서 운동권 일각의 좌경용공성 문제점에 대해『만약우리사회에 자생적공산주의자가 있다면 정부도 일단의 책임을 면할길 없다』고 강조했읍니다.
70년대 유신체제때도 그랬읍니다만 올해는 종교인들의 깊숙한 정치발언들이 많았고 정교분리의 원칙이 새삼 제기되기도 했읍니다.
종교인의 시국발언으로는 금추기경의 로마발언이 절정을 이루었고 개헌·민주화·인권문제등을 계속해 언급한 금추기경은 어느 누구보다도 정가의 주목을 모은 정치적 거물의 느낌을 주기도했지요.

<김추기경 발언이 절정>
그러나 평화적인 정권교체, 합의 개현등을 갈망하는 온건노선의 종교인들 목소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시국문제가 첨예화할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입니다만 특히 올해의 종교계는 천주교·개신교·불교 모두가 진보와보수의 갈등이 확연했지요.
기독교의 경우 근본주의,또는 복음주의 신학노선을 따르는 보수측과 정치·해방신학등의 자유주의 신학노선을 따르는 진보측의 시국관은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면서 민주화·인권· 사회개혁· 사상문제등을 거론했읍니다.
반갑지 않은 사건으로는 정물인 금산사 대적광전의 소실을 비롯, 미술계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꼽을수있겠습니다.
미술계는 연초부터 미협이사장 선거가 유례없이 뜨거운 열기를 보였고 서양화가 남관화백의 작품(20여점) 네다바이사건, 이탈리아 여류조각가「미트리오」씨의 서울 두인화람 전시회중 작품 3점도난사건 (싯가7천만원)등이 잇달았음니다.
이밖에 서울 강남 A빌딩의 건축조형물 작품 바꿔치기도 말썽이 됐었지요.
건축계의 중진 김수근씨와 미술계의 외교관으로 통한 조각가 김세중씨등이 별세하기도 했습니다.
박길진원광대총장, 소설가 선우휘씨, 국문학자 정인승씨도 올해 타계한 문화계 인사들이었지요.
음악계에서도 원로작곡가 박태준씨, 원로국악인 김기수씨의 별세가 큰 손실로 꼽힙니다.
올해는 각 분야에서 새로운 경향과 성과도 많았던것 같은데 좀 살펴보기로 합시다
음악은 공연 시즌이 따로 없다는 이변을 보이면서 전천후로 푸짐했읍니다.

<「소설의 시대」 다시와>
6개 실내악단이 참단돼 물량을 떠난 질을 추구했고 새로운 창작 7편을 포함한 15편의 오페라가 알찬 내용을 가지고 1년내내 공연된 것은 아주 특기할만한 일이었습니다.
문학은 80년대 초반을 주도했던 민중·서사시의 특성이 눈에 띄게 완화되면서 다양한 음색을 보이는 중견시인들의 작품이 시단의 주축을 이루었음니다. 현실참여의 성격이 강한 고은·김지하·이시영·곽재구·김룡택씨등도 다양한 모색속에서 서정성을 담은 작품을 내놓았지요.
80년대 들어서면서 이상하게 위축됐던 소설의 경우는 올해들어서야 다소 숨통이 트이는듯한 느낌을 주었지요.
「소설의 시내」가 재현되는게 아닌가하는 징후들이 나타났음니다. 그 하나는 조정내씨의 『태백산맥』등 대하소설의 등장이고 다른 하나는 강석경씨의『숲속의 방』 조성기의『야훼의 밤』등 소위본격소설이 대중독자층에 파고들기 시작했다는 점이지요. 이들 소설은 10만부를 육박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동인운동이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도 특기할만 합니다.
평론에서는 제4세대 비평가군이 확실하게 부상했다는 점을 꼽을수 있겠지요. 권오룡·성민엽·정과리·홍정선·주형준·이남호씨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무용은 작품의 주제가 대부분 한국고전이나 민간설화였다는 점이 올해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대표적 예로는 민간단체인 한국무용협회가 처음으로 주관, 총33개 작품이 공연된 대한민국무용제(9월7일∼10월6일)에 등장했던 국립발레단의『춘향의사랑』유니버셜발레단의 『심청』, 발레블랑의『자명고』등을 들수있지요.
양적인 팽창으론 영화계가 단연 으뜸이지요. 개정 영화법에 따른 제작자유화로 지난해 20개사였던 영화사가 61개사로 무려 3배나 늘어났습니다.
또『겨울나그네』의 곽지균,『영웅연가』의 김유진,『가슴을 펴라』의 최원영등 젊은신인 감독들이 14명이나 등장했구요. 이들 신인감독들의 데뷔작은 금년「좋은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 새로운 영파워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국산영화의 관객동원은『외인구단』(28만7천명) ,『겨울나그네』(22만명),『내시』(18만2천명)의 순이고 외화로는『아마데우스』가 47만5천명을 기록했지요.
연극도「미리내」「바탕골」등의 소극장들이 생겨났습니다.
올해도 소극장 운동이 활기를 띠었고 『철수와 만수』(연우무대) 『위기의 여자』등 소극장의 장기 공연작품도 많이 나왔어요.
롱런 작품은 주로 오늘의 세태를 풍자한「시대 풍자극」이었읍니다.

<문화재 발굴도 활발>
문화재에서는 채색 토용18점과 12지상 4점등이 출토된 경주 토용총발굴과 경배 순흥벽화고분의 발굴등이 큰 경사였습니다.
또하나 올해의 경사스런 문화계 업적으로는 국립 중앙박물관의 중앙청이전 개관과 국립 현대미술관 신축개관, 창경궁복원등의 문화공간대폭 확충을 빼놓을수 없겠지요.
2천9백여평의 전시 면적에 7천5백여점의 유물을 전시한 중앙박물관은 서역·중국·일본등의 외국 유물전시실을 별도로 만들어 규모와 내용면에서 세계적 박물관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과천시대를 새롭게 연 현대미술관도 광복절이래의 숙원을 성취, 국제수준의 미술관으로 발돋움 했구요.
일제에 의해 동·식물원까지 설치되는 놀이터로 훼손 당했던 옛 창경궁을 본래 모습의 궁궐로 복원한 것은 쾌거였지요.
이들 문화공간의 확충은 모두가 86아시안게임과 연계된 정부 문화사업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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