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등소평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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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벌써 10여일째 접어든 중공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계속 확산돼 나가고 있다.
중공데모는 처음에는 당의 사전 계획에 의한 하향식 관제데모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의식화된 다중의 움직임은 어느 한폭의 의도대로 쉽게 조정되기 어렵다는 것은 많은 민중운동사에서 이미 입증됐다. 「루터」의 반교회 투쟁으로 시작된 독일 농민전쟁이 그 좋은 예다.
처음에 농민들이 「루터」에 호응하여 당시 착취기구의 상징인 가톨릭교회에 항거하고 나섰을 때「루터」는 앞장서서 그들을 지도했다.
그러나 농민들의 혁명적 요구가 「루터」의 의도를 벗어나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루터」는 혁명군중을 규탄하고 나섰다. 결국 「루터」는 농민들로부터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소외되고 농민전쟁은 계속 확대돼 나갔다.
중국 공산당과 학생들의 시위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아직 명백히 밝혀진 바는 없다.
문제는 중공의 오늘의 현실이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불가피할 만큼 변화됐다는데 있다.
지금 중공주변의 아시아 비공산국가들에서 학생, 지식인, 종교인들에 의한 자유화 운동은 하나의 보편적 현상이 되어있다. 이것을 중공학생들이 모를리 없다.
중공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는 자유와 평등,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의 격차에 대한 갈등의 표현이다.
공산주의는 만민평등을 주장한 나머지 자유를 제한해 왔다.
그러나 자유가 없는 상태에서 방만으로 인간의 삶이 유지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중공학생들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는 것은 그런 욕구와 공산주의체제의 모순의 표출이다.
중공은 등소평 집권이후 자본주의를 도입, 경제적 근대화에 힘을 기울여 왔다. 그것은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경제발전 성장은 정치적 민주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그 속도가 지연되고 일정한 한계에서 벽에 부닥치게 마련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을 거쳐서 비로소 가능했고 프랑스의 자본주의는 세 차례의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완성될 수 있었다.
중국 공산당이 정치개혁의 사전조치로 학생시위를 부추겼다는 주장은 그런 점에선 설득력을 갖는다.
중공의 당과 정부는 아직은 조용한 관망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중공이 추진하고 있는 근대화 정책은 학생들의 요구가 실현되지 않고도 수행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제발전은 경제의 자율화 없이는 불가능하고 경제의 자율화는 정치의 민주화 없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이래서 근대화와 민주화는 「한 수레의 두 바퀴」에 비유돼왔다.
산업과 군사의 근대화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정해 놓고 있는 중공의 현실주의가 학생들의 서구식민주화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지 등소평의 선택이 주요한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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