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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최순실 게이트’ 와중에 다음 정부로 떠넘긴 구조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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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결국 다음 정부로 넘어가게 됐다. 정부는 어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당분간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해 현대·삼성중공업의 ‘빅3’ 체제를 유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대신 조선산업을 경쟁력과 수익성 위주로 재편하고 고강도의 자구노력을 통해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늘 듣던 레퍼토리다. 이럴 거면 대체 뭣 때문에 그동안 시간을 끌고 맥킨지에 수십억원의 돈을 내고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는지 모를 일이다. ‘최순실 게이트’ 와중에 벌어진 무책임한 결정이다.

정부는 “대우조선을 정리하고 2강으로 가자는 쪽으로는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애초 대우조선 퇴출은 정부의 계산 밖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새 경쟁력 방안도 사업 부문의 인수합병이나 자산 매각 없이 두루뭉실하게 짜였다. 부실의 주범으로 꼽혀온 대우조선의 해양플랜트 사업은 유지하기로 했다. 방위산업 부문을 따로 떼 매각하는 방안도 무산됐다. 정부가 내놓은 대응이란 게 기껏 시간이 흘러 조선 업황이 좋아지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우조선은 올 상반기 기준 4582억원의 자본잠식에 빠졌다. 내년 말까지 버틸 자금이 없다. 정부는 대우조선이 올해 62억 달러를 수주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13억 달러에 그쳤다. 계산이 틀려지면 대우조선이란 밑 빠진 독에 퍼붓는 돈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돈은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최대 채권자인 수출입은행이 나눠서 짊어지게 된다. 정부는 “추가 지원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말뿐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벌써 두 은행의 출자전환을 통한 대우조선 자본 확충과 유동성 지원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대우조선의 생사 문제에 정답은 없다. 조선 업황이 언제 나아질지, 중국과 기술 격차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변수가 많은 데다 하청업체 포함, 임직원 4만여 명이란 ‘정무적 숫자’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정부는 최소한의 비전과 디테일은 제시하고 시장을 설득했어야 했다. 그저 미루고 넘기고 덮어서는 다가올 더 큰 재앙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