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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어느 예술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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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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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어떻게 이런 따뜻한 태도로 친구의 죽음을 대할 수 있을까.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3중주 작품번호 50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친한 친구를 잃고 이 작품을 쓴 작곡가는 비장함 대신 아름다움에게 추모를 맡겼다. 굽이치는 선율이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끝은 왜 꼭 있어야 하는가.’

(함부로 울기보다 품위를 잃지 않는 추모. 차이콥스키의 3중주 Op.50에 붙은 부제는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이다. 죽음 앞에서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3중주가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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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전쯤 이 곡을 연주했던 바이올리니스트가 이달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권혁주, 1985년생.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서른인 그는 연주 전 날 택시 안에서 심정지로 숨을 거뒀다. 그가 차이콥스키를 연주했던 곳은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이었다. 2005년 세상을 떠난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 추모 무대였다. 권혁주의 연주는 언제나처럼 직관이 떠받들고 있었다. 타고난 느낌에 따라, 그리고 꼬마 시절부터 한몸처럼 붙어있었던 악기와의 호흡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가 본 권혁주의 마지막 무대였다. 죽음에 대한 질문은 차이콥스키, 추모 무대를 거쳐 이 젊은 연주자를 통해 날아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한 태도로, 그러나 강렬하게 찔러대는 음악을 연주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자기 생각이 확고한 연주자였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권혁주의 빈소에 ‘그래도 난 오빠 연주가 제일 좋아’라는 메시지를 쓴 꽃을 보냈다. 둘은 직관적으로 통하는 연주자였다.)

많은 매스컴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죽음’이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나는 이목을 끄는 ‘천재’라는 단어 대신 ‘예술가’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그는 마지막마저 예술적이었다.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를 떠올리게 했다. 36세에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세상을 떠난 분덜리히 역시 많은 이에게 이 삶의 끝에 대해 숙고하게 했다.

분덜리히의 목소리 또한 자연스럽고 본능적이었다. 그는 가난, 아버지의 결핍과 분투하며 자랐지만 생애와 정반대로 티끌 하나 없는 음성으로 노래했다. 노래 잘 하는 성악가는 많지만 이렇게 자기 고유의 소리를 완성하기는 힘들다. 그토록 수많은 팬이 예측도 못한 새에 단 한 발자국 만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꼭 50년 전 가을이었다.

(한 번 들으면 몇십번씩 반복재생하게 되는 희한한 목소리. 프리츠 분덜리히의 ‘시인의 사랑’은 거의 모든 음반 애호가의 집에서 닳아져있을 명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연기처럼 올라왔단 사라지는 첫 곡 ‘이 아름다운 오월에’)

청중은 예술가를 보며 희한한 세계 하나를 상상한다. 음악이 연주자의 마음과 정신을 서서히 잡아채 끌고 가는 곳이 있을 듯하다. 연주자들이 차이콥스키의 3중주를 40분 넘게 연주하며 경험하는 열락의 세계가 있을 거라 상상한다. 나는 그 상상이 강렬할수록 좋은 연주라 믿는다. 권혁주가 그랬다. 그리고 마지막 길마저 그렇게 갔다.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 이 둘의 의미는 무엇인가. 산 자들은 끝까지 알 수 없을 질문이 던져졌고 그의 음악을 기억하는 청중은 숙고한다. 좋은 예술가는 질문을 던지는 법이다. 부단하고 고달프게 음악을 연마했던 젊은이가 평안히 잠들길 기원한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