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보다 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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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호 29면

100세 시대, 이른 퇴직의 결과물은 소규모 창업이 많아지는 것이다. 가장 쉽고 흔한 창업이 요식업이고, 그것이 한집 건너 하나씩 치킨집이 존재하는 이유다. 가게를 운영하는 고단함은 장사만 잘된다면 참을 수 있으련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마저 쉽지 않다. 최근에 늘어나는 작은 서점, 동네 서점이 치킨집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굳이 퇴직 후가 아니더라도 흔한 커피집 대신 책방이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갈 젊은이들의 일터가 될 수는 없을까.


새로운 대안으로 서점이 관심받고 있지만 여전히 서점 숫자는 줄고 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있는 일반 서점의 숫자는 2000개가 조금 넘는데, 이것은 10년 전에 비하면 거의 40%, 2년 전과 비교해도 10% 정도 줄어든 것이다. 여전히 서점은 그렇게 이문을 많이 볼 수 있는 장사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서점 감소의 추세는 점점 완화되고 있다. 도서정가제가 강화된 재작년부터 뚜렷하다. 어디서나 같은 가격으로 책을 팔게 되면서 굳이 온라인 서점이나 큰 서점을 헤매지 않고 손쉽게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곳곳에 개성있는 서점들이 생기고 있고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물을 가진 건물주들이 서점을 유치하는 경우도 생겼다. 서점을 창업하고 싶은 사람들의 요구가 늘어나서 한국출판인회의와 서울북인스티튜트에서 서점학교를 연다.


서점학교의 첫 강의를 맡아 준비를 하면서 보니, 책장사가 만만하지는 않다는걸 새삼 깨닫는다. 책 한권 들고 향기 좋은 커피 한잔 곁들이다 책을 찾는 손님에게 우아하게 응대하면 되는 일은 아니다. 책을 운반해 본 경험이 있다면 알겠지만, 몇 권 겹쳐 들면 그 무게가 어마어마하다. 이가 빠진 서가를 채우고 쓸고 닦는 노동의 강도도 상당하다. 뿐만 아니라 혼자, 혹은 서넛이 작은 서점을 운영하기 위해서 판매할 책을 골라 매입도 해야 한다. 정가와 서점에 책이 공급되는 가격의 비율이 공급률인데, 작은 서점이라면 대개 70% 주변에서 결정된다. 정가의 70%에 책을 매입하면 나며지 30%에서 임대료·설비비, 그리고 인건비를 뽑아야 하는데, 빡빡하다. 공간을 사용하는 비용이 전체 매출의 10%를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인건비로 쓸 수 있는 것은 매출의 6~7%선이면 다행이고 순이익은 대형서점도 5%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인건비를 박하게 책정해도 1~2%의 순이익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도, 여전히 서점학교를 열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할 생각이다. 동네의 작은 서점들이 장차 마을 공동체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온라인서점 등의 위협에서 벗어나 중요한 문화적 장소·기관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서점에 대한 관심을 높인, 잘 나가는 작은 서점들은 진정한 의미의 동네 서점들이 아니다. 소문 속의 서점들은 대부분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곳들에 포진해 있다. 이 서점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마실 나온 사람들보다는 부러, 애써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많다. 외딴 곳의 서점으로 고객들이 제법 찾는 곳들도 없진 않지만, 그곳들도 동네의 서점이라기보다는 사연을 가진, 다른 곳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서점이다. 비범한 기획력이 이러한 서점들의 장점이지만 한편으로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장벽일 수도 있다.


엄밀히 따져보면, 동네 책방이 사라진 이유는 ‘동네’가 붕괴했기 때문이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에 잠자리만 가득한 동네를 동네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집에서 잠만 자고 제각각 다른 동네로 흩어져 학교나 일자리로 가는 가족들에게 급한 물건이나 땜빵 삼아 구할 편의점 이외에 집 주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동네’가 없는데 ‘동네’를 대상으로 장사할 서점이 있을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건 ‘동네’의 복원이다. 여기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취향·관심·목표·이상 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동네’. 상상의 공동체이면서 실재하는 공동체인 이런 사람들을 위한 서점들이 현재 속속 출현하고 있다. 또 하나의 ‘동네’는 진짜 ‘동네’다. 아무리 교통이 발달해서 오가는 것이 간편해도 지리적으로 묶인 동네엔 특징이 있게 마련이다. 산세와 지세를 반영하기도 하고 지가에 따라 경제적 수준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지역은 역사를 공유한다. 유럽의 오래된 작은 마을이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다. 고풍스런 교회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들어선 작은 가게들. 동네살이에 필수적인 가게들. 어쩌면, 동네 서점은 펍(Pub)이면서 우체국이고 문방구이면서 채소가게가 돼야 할지도 모른다. 동네 아이들부터 할머니까지 하루에 한번은 기웃거릴 수 있는 매력적이면서 꼭 필요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작은 서점을 위해서 ‘동네’가 필요한데 역설적으로 작은 서점을 계기로 ‘동네’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주일우문학과 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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