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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와인 주문 받아놓고 “품절” 시간 남았는데 “끝났어요”…한국 식당 실망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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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 생활 9년차 외국인 셰프의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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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 디 살보

나는 올해로 서울 생활을 한 지 9년 차인 ‘프로 서울러’인 동시에 레스토랑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특급 호텔 셰프다. 그 경험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서울의 레스토랑은 퀄리티 면이나 선택의 폭 등에서 긍정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좀 더 향상되어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다.

곁들임 채소 바꿔달라 했더니
알아보지도 않고 “안 됩니다”
다시는 그 식당 안 가게 돼

대부분 식당 9~10시 문닫아
여유있는 저녁 모임 어려워
식사 도중 계산서 줘 재촉도

가장 대표적인 게 서비스다. 레스토랑의 전반적인 퀄리티가 높아졌다고 해서 고객들은 절대로 만족하지 않는다. 오히려 레스토랑에 기대하는 서비스의 수준은 나날이 더 높아 간다. 꼭 손님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손님이 음식을 보다 편안하게 즐기려면 서빙하는 종업원의 역할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서비스가 음식과 손님 간의 중요한 연결 고리라는 말이다. 레스토랑 종사자라면 손님이 그 레스토랑을 방문해 얼마나 훌륭한 경험을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다시 방문할 수 있게 만들도록 고민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단지 맛 때문에 레스토랑을 재방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번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편 발간(11월 7일)을 앞두고 많은 레스토랑이 특히 서비스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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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경험상 정말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서울에 많지 않다. 대부분 영혼 없는 서비스를 하는데, 그런 데서 먹으면 정말 음식 맛이 기가 막힐 정도로 훌륭하지 않은 이상 다시는 방문하고 싶지 않다. 사실 서비스란 대단한 게 아니다. 얼마 전 동료 셰프들과 서울 청담동의 한 파인 다이닝을 갔다가 세심한 서비스에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다. 화장실을 가느라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돌아와 보니 내가 쓰던 냅킨이 가지런히 접혀 테이블에 다시 예쁘게 놓여져 있는 게 아닌가! 특급호텔을 제외하고 서울에서 이런 세심한 서비스를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매우 인상 깊었다. 아쉽게도 이 식당 같은 디테일한 서비스를 다른 레스토랑에선 받아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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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심수휘]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건 들쑥날쑥한 영업시간이다. 식당마다 대부분 문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재료가 소진되거나 손님이 별로 없으면 아무 공지 없이 일찍 닫아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한번은 오후 9시가 되기 전에 서울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 갔다. 영업 종료 시간은커녕 라스트 오더(마지막으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시간)까지도 10~15분 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영업이 끝났다”고 해서 발걸음을 돌렸던 기억이 있다. 주인은 딱히 이유를 설명해 주지도 않았다. 손님이 별로 없으니 그냥 문을 일찍 닫기로 한 것 같았다.

식당 영업도 비즈니스다. 비즈니스를 할 때는 꼭 지켜야 할 게 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는 레스토랑이 적지 않다. 손님이 아무리 영업 종료 시간에 임박해 방문했더라도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 실망시키는 행동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작은 스낵이나 음료, 아니면 다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님을 위한 배려는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영업이 끝났으니 돌아가 달라”고 말하는 건 그 업에 종사하는 셰프로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밤 10시에 닫는다고 했으면 10시 5분 전에 손님이 와도 음식을 서브하는 게 맞다.

또 다른 문제는 영업시간 그 자체다. 서울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오후 9시 이후에 영업하는 곳이 거의 없다. 파인 다이닝뿐 아니라 대부분의 식당이 오후 9시30분이면 문을 닫는다. 저녁을 일찍, 빨리 먹고 자리를 옮기는 게 한국의 식문화라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친구들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식사를 즐기고 싶은데, 빨리 먹고 자리를 떠야 한다는 떠밀리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서울은 점점 더 국제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관광객뿐 아니라 외국 비즈니스맨도 많이 온다. 이들을 다 끌어안으려면 어느 정도 늦게까지 열어 손님이 여유 있게 식사할 수 있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많아져야 한다.

레스토랑의 전반적인 서비스가 부족한 이유는 전문 인력을 키우는 곳이 부족한 데다 서비스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고향 이탈리아에는 호텔학교 등에서 서비스 인력을 교육시켜 시장에 배출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럽 레스토랑에는 지배인(maitre d’) 시스템이 있어 체계적으로 서빙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을 뿐 아니라 전문성도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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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심수휘]

서비스의 전문성이 떨어져서인지 서울의 레스토랑들은 손님에게 유연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 유연함이란 이런 거다. 음식을 주문할 때 때때로 메뉴 구성을 바꾸고 싶은 경우다. 예를 들어 파스타의 면을 바꾼다든지, 여러 재료 중 하나를 빼거나 더한다든지 말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이 아닌 이상 셰프로서 고객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15세부터 요리를 하며 이 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손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건 셰프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서울의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번은 서래마을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메인 요리 옆에 곁들여 나오는 가니시를 다른 것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는데 거절당했다.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고,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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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심수휘]

또 다른 유연한 서비스는 묻기 전에 말해 주기다. 예컨대 메뉴 등이 소진되면 고객이 그걸 고르기 전에 미리 알려주라는 얘기다. 한번은 아내와 저녁을 먹으러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 갔는데, 우리가 심사숙고해 와인을 고를 때마다 번번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원하는 음식이나 음료가 없으면 실망스럽다. 와인 리스트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고객 서비스인 이유다. 그렇게 관리를 해도 어쩌다 떨어질 수는 있다. 다만 그럴 경우에는 고객에게 미리 알려줘야 한다. 주문하고 나서야 없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실망스럽다. 특히 중요한 손님이라도 모시고 갔을 때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실망을 넘어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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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심수휘]

계산서 얘기도 꼭 해야겠다. 식사 중에 테이블 위에 계산서를 두고 가는 게 나는 불편하다. 아직 음식을 먹고 있거나 심지어 아직 주문한 음식도 나오기 전에 계산서를 테이블에 놓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왠지 빨리 먹고 가라고 재촉하는 암묵적인 행동인 것 같아 늘 언짢다.

마지막으로 메뉴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스펠링이나 번역의 오류는 당연히 없어야 하고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그 메뉴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되어 있어야 한다. 손님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도 모른 채 레스토랑 문을 나서면 되겠는가. 장황한 설명도 필요 없다. 주재료에 대해서만이라도 설명을 달아 주면 된다. 예컨대 내가 근무하는 호텔의 더 라운지의 캐비아 부티크에서는 한국 사람에게 친숙하지 않은 캐비아의 종류를 간략하게 설명해 캐비아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스테파노 디 살보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총괄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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