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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사라다칼국수·바지락팝콘·토마토짬뽕…이태원 신감각 분식집 ‘중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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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를 뿌리지 않은 상태로 상에 나오는 사라다칼국수. 칼국수가 보이지 않을 만큼 견과류를 많이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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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집을 찾아갔다. 소주·맥주·옥수수막걸리도 판다. 당연히 안주와 밥도 있다. 음식이 최고는 아닐지라도 새롭고 재미있다. 메뉴마다 문화적 역동성이 꿈틀거린다. 맛도 보통보다는 훨씬 낫다. 산뜻하고 경쾌하다.

이태원의 신개념 분식집 ‘중심’(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32길 14/전화02-2235-0707)과 주인 이규성(43)씨 얘기다. 녹사평역 사거리 이태원시장 들어가는 뒷골목에 있다. 칼국수가 주 종목이긴 하지만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칼국수는 아니다. 메뉴가 색다르다. 이씨가 16년간 해외에서 공부와 사업을 하면서 넓힌 견문이 창조적 모티브로 작용해 개발한 퓨전 한국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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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흑임자 소스를 뿌린 사라다칼국수는 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말이 떠오르는 음식이다.

우선 칼국수가 그렇다. 반죽 하나로 10가지 변주를 했다. 바지락·김치·들깨·비빔(각 6000원), 카레·명태회비빔·중심짬뽕(각 8000원), 토마토짬뽕·채개장(각 1만원), 사라다(1만5000원) 등 이름과 내용이 기발하다. 토마토짬뽕칼국수는 토마토를 스튜처럼 끓이고 몇 가지 해물을 넣어 말아 낸다. 중국집 짬뽕처럼 뻘겋지만 맵지는 않다. 국물 있는 토마토해물파스타가 연상되는 맛이다. 채개장은 채소육개장이다. 채수(채소육수)에 불린 건채소(고사리·토란대·호박·표고)와 느타리버섯·대파·무를 넣고 맛이 우러나도록 끓인 장국이다. 거기에 칼국수를 만다. 비건(vegan: 채식주의 식단) 음식이다.

밥은 하우스꼬마김밥 4쪽(1000원), 바지락비빔밥(7000원), 빠다장조림(8000원), 멍게비빔밥(1만원), 새우간장밥(1만1000원), 성게비빔밥(1만2000원)이 있고, 냉모밀(9000원), 건진만두(1만원)도 있다. 안주는 명태회보쌈(1만8000원), 누룽지안심탕수육(2만원), 바지락팝콘·애호박전(각 1만원) 네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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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중심’의 외관. 그림을 그린 셔터 부분 내부는 주방이고 오른쪽 유리창 안은 홀이다. 셔터 그림의 인물은 주인과 흡사하다.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그렸다. 별도의 간판은 없다. ‘중심’의 주인 이규성씨.

처음 가게 이름은 ‘중(中)’이었다. 뭔가 가운데이고 싶은 마음을 내걸었다. 그랬더니 주인 외모에 빗대어 ‘중이 하는 음식점’이라는 우스개가 떠돌았다(그는 머리를 스님처럼 완전히 밀었다. 채식주의 음식도 판다). 종교적 오해가 생길 것 같아 생각 끝에 마음 심(心)자를 더해 상호를 ‘중심’으로 바꿨다. ‘가운데이고 싶은 마음’을 더 분명히 하고, 전국에서 특산 식재료를 조달해 음식으로 만들어 파니까 식재료의 중심, 맛의 중심이 돼야겠다는 각오와 의미도 부여했다.

그랬지만 그를 스님(또는 문어)이라 부르는 사람은 여전히 있고, ‘중심사’라는 애칭 아닌 애칭도 살아있다. 상호 ‘중심’은 기억하기는 쉽지만 너무 흔한 단어여서 손해 보는 구석도 있다. 인터넷에서 ‘중심’을 검색하면 별로 나오는 게 없다. ‘이태원 중심’이라고 해야 글이 딸려 나온다. 인터넷 세상에서 약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음식점은 성업 중이고, 2주일 뒤면 다섯 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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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그림에서 보듯 메뉴는 나무 판자에 캘리그라피로 써서 걸었다. 손님으로 오다가 친해진 작가 솜씨다.

가장 많이 팔리는 건 대표상품인 바지락칼국수. 바지락·칼국수·애호박·대파·물·소금만 들어간 순수 바지락칼국수다. 바지락은 전북 고창의 도매상과 직거래한다. 뻘에서 채취해 60시간 뒤에 ‘중심’에 도착한다. 36시간은 현지에서 해감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 이동한다. 택배로 매일 아침 10시에 도착한다. 명절이나 긴 연휴 때는 미리 받아 얼려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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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의 대표음식인 바지락칼국수를 조리하는 주인 이규성씨. 주인의 큰 체격처럼 주방 동선이 널찍하다.

바닷가에 가지 않는 한 서울에서는 가장 신선한 바지락 맛을 낸다고 자부한다. 디포리도 써보고 황태 대가리도 써봤지만 바지락만 넣을 때가 최고더라. 해장에는 바지락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바지락을 끓는 물에 잠깐만 삶으면 육수가 우러나지 않는다. 껍데기를 열어보면 얇은 막이 즙을 감싸고 있다. 이때 살을 발라 먹으면 가장 맛있다. 그러나 국물 맛은 싱겁다. 더 끓여야 진해진다. 국물을 낸 조갯살은 발라서 바지락팝콘에나 바지락비빔밥에 쓴다. 칼국수는 바지락 밑국물에 국수를 삶으면서 생 바지락을 크게 한 줌 넣고 살짝 익힌다. 그러면 국물과 조갯살이 다 맛있게 된다. 찬물에 바지락 넣고 가열하면 국물이 비리다. 끓는 물에 넣으면 비리지 않고 시원하다. 이걸 터득하는 데도 제법 세월이 걸렸다. 고창의 거래처 사장에게 물어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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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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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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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회비빔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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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짬뽕칼국수 국물은 토마토를 스튜처럼 끓여서 만들었다.

화제의 메뉴는 ‘사라다칼국수’다. 그의 아이디어로 만들었다. 캐나다에서 16년이나 살다 돌아온 그가 ‘샐러드’가 아닌 ‘사라다’라 한 이유가 궁금했다.

음식을 개발해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한 부분이다. 음식을 만들거나 이름을 지을 때 기준은 내 입맛이고, 방법은 내 경험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팔자’는 생각이다. 칼국수 국물은 왜 사골 아니면 해물국물뿐인가, 꼭 뜨겁게 먹어야 하나, 차게 하면 안 되나. 외국에 살면서 식품유통사업을 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게 실마리가 돼서 만든 음식이다. 돌잔치에서 흔히 먹던 마요네즈로 버무린 ‘사라다’가 생각이 나서 이름을 그렇게 정했다. 입맛과 경험을 따른 것이다.”

‘사라다칼국수’ 그릇은 항아리 뚜껑을 뒤집어서 쓴다. 양상추를 바닥에 깔고 삶아서 찬물에 헹군 칼국수를 담은 뒤 아몬드 편, 부순 호두로 칼국수가 보이지 않을 만큼 덮는다. 그 위에 데친 토마토 하나를 4분해 꽃처럼 한 가운데 올린다. 소스는 손님 앞에서 직접 뿌린다. 참깨·흑임자 즙과 기성품 페이스트를 섞고, 현미식초·매실청·마요네즈·설탕을 더한 액상이다. 맛이 고소하고 상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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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짬뽕칼국수는 기본 상품인 바지락·김치·들깨를 섞은 칼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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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간장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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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꼬마김밥

애호박전은 차진 반죽에 채친 호박과 들깻잎·풋고추·부추 등을 넣고 달군 팬에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구워내는, 그런 전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모습과 전혀 다르다. ‘중심 애호박전’의 채소는 호박뿐이다. 호박을 썰었다고 말하기 무색하게 굵게 쪼갰다. 서양 감자튀김보다 굵다. 어른 가운데손가락 만하다. 처음 봤을 땐 “칼질하기가 귀찮았나, 호박을 장작 패듯 했군” 하며 혼잣말을 했다. 주인 설명을 들으면 이유가 수긍이 된다.

호박 단맛을 풍부하게 느끼게 하려고 굵게 잘랐다. 호박전이니까 호박에서 맛의 80%는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반죽을 호박이 서로 흩어지지 않을 정도만 묻힌다. 3가지 가루(전분·튀김가루·부침가루)를 섞은 반죽을 아주 얇게 입혀 기름 넉넉히 두르고 센 불에 튀기듯 구워낸다.”

그의 말대로 아삭아삭 호박이 씹히면서 물씬 고이는 단맛이 입안에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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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전은 호박 외에 별로 들어간 게 없다. 호박을 굵게 자르고 반죽을 최소화해 센 불에 튀기듯 빠르게 구워 호박의 단맛이 풍부하다.

이제 그는 정성·재료·양념·노력·조리환경 등 요리의 덕목들이 대략은 정리되는 듯하다.

칼국수 장사 5년 하고 나니까 면을 좀 알겠다. 결국엔 땀과 노력이더라. 기계도 써보고 손으로도 해보고, 이렇게 저렇게 다 해봤지만 손 반죽으로 귀결됐다. 국물을 바지락만으로 내는 것처럼 국수 반죽도 중력분만 쓴다. 간은 키토산 소금으로 한다. kg당 가격이 천일염의 10배쯤 된다. 염도가 낮아 들어가는 양은 많다. 고혈압과 당뇨에 좋다고 하는 소금이다. 써보니 좋아서 계속 쓴다.사업 비밀인데, 반죽할 때 콩나물가루(건강기능식품)도 넣는다. 이것도 비싸다. 비싼 재료로 음식을 해야 차별화 할 수 있으니까, 비싸지만 쓰는 게 아니고 비싸니까 계속 쓴다(※콩나물을 말리면 대두황권(大豆黃卷)이라는 한약재가 된다).

참기름은 안 쓴다. 대신 참깨 가루를 넉넉히 넣는다. 간장새우밥 같은 경우 과하다 싶게 뿌린다. 참기름을 넣으면 향이 너무 강해서 다른 맛을 모두 잡아먹는다. 참깨 가루는 고소하기는 하지만 다른 맛까지 해치거나 누르지 않는다. 매장과 주방 넓이가 비슷하다. 주방에 공을 들였다.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서서 비켜 갈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널찍하다. 음식 만드는 여건이 쾌적해야 맛있는 음식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방에 투자를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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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팝콘. 삶은 바지락 살을 튀겼는데 크기나 모양이 팝콘 같다. 씹으면 바지락 특유의 바다 맛이 톡톡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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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안심탕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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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회보쌈

그는 대학 졸업 후 1996년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음악학교(녹음·작곡)와 공대(컴퓨터공학)를 졸업했다. IT매니저로 4년 반 동안 직장생활도 했다. 그러다 2007년께 한국식품 유통사업을 시작했다.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한·중·일 시장에 파는 사업을 했다. 김·다시마 같은 물건도 취급했다. 전남 지역 물건을 많이 다뤘다. 최대주주였지만 쫓겨났다. 대표자 명의로 대출받은 17억원이 빚으로 남았다. 배신감·허탈감도 달래고 재기를 모색하러 2011년 귀국했다. 잠깐 다니러 온 거였다.

하루는 친구 만나러 이태원에 갔다. 작은 가게에 ‘임대’라고 써 붙인 쪽지를 우연히 봤다. 할머니가 하는 칼국수 집이었다. 하면 되겠다 싶었다. 2011년 11월 11일(국숫발이 연상되는 숫자!) 가게를 일단 계약했다. 2주일이면 끝날 줄 알았던 공사가 자꾸 늘어졌다.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수리해서 단기간에 권리금이나 챙겨볼까 해서 시작했는데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전 주인 할머니(그는 ‘이모’라고 했다)에게 칼국수 좀 가르쳐 달라고 매달렸다.

다음날 새벽 5시에 나오라고 해서 갔다. 반죽과 육수 내는 걸 보여줬다.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근데 그게 대충이 아니었다. 본 대로 해보니 밀가루 내도 나고 끈기도 없고, 아주 엉망인 국수가 나왔다. 어느 날 반죽이 남아 냉장고에 두었다가 다음날 면을 밀어보았다. 맛이 달랐다. 그렇게 바닥부터 배우며 ‘중심’이 출발했다. 메뉴가 처음엔 6가지였다. 지금은 23가지다.”

경쟁이 극심한 음식사업에 뛰어들어 5년 동안 생존·성장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돼준 건 ‘중심전도’다. 직거래하는 식재료 전국 지도를 그는 그렇게 아름을 붙였다. 지도를 보면 고성(성게·해삼·전복·징둥아리·미역·명주조개·섭·재첩·가자미·문어), 속초(명태회), 미시령(산나물), 음성(돼지고기), 정읍(소고기), 포항(코다리), 고창(바지락), 목포(소금), 화순(기정떡), 강진(매생이), 통영(멍게), 해남(된장·간장·고추장·말린 나물), 제주도(청귤·감귤) 등이 표시돼 있다.

남은 밑천은 캐나다에서 유통 사업할 때 거래하던 한국 각지의 특산품 상인들뿐이다. 전라도 상인들이 많다. ‘망해서 귀국했으니 도와 달라’고 부탁해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공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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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는 곳곳에 음식을 설명한 글을 적어놓았다. 내용을 보면 깨알 같은 자랑들이다.

그의 명함에는 ‘中心 & FOOD CULTURE’라는 로고 글씨가 크게 새겨져 있다. 음식을 문화로 접근하고 미래의 중심에 서겠다는 의욕과 야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칼국수가 주력상품인데 두 가지 김치(배추·무) 맛이 일정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큰 명절만 이틀씩 쉬고 쉬는 날 없다. 오전 11시~오후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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