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레터] 결자해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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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실상을 목도한 국민의 분노 수위가 심상치 않습니다. 대통령 책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이 확산될 조짐입니다. 학생과 시민에 이어 교수와 종교계까지 가세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비상한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사태의 장본인인 최씨의 상황 인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습니다. 독일에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최씨는 ‘모른다’ ‘아니다’로 일관했습니다. 대통령이 인정한 연설문 유출 정도만 인정했습니다.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보겠다는 심사일까요.

검찰 특별수사본부든 특검이든, 국정 농단의 진실을 낱낱이 밝히려면 결국 최씨 입을 통해야 합니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최씨 신병을 확보해 소환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절차 밟다가 날 새겠지요. 최씨의 자진 입국이 최선이지만, 그걸 가능하게 할 사람은 박대통령 뿐입니다. 결국 국정 농단 파문이 가져온 난국을 수습하려면 박대통령이 결단을 해야 합니다. 최씨를 불러들여 진실부터 밝히는 게 바른 수순입니다. 민심은 결자해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직사회도 최순실씨 국정 농단 파문으로 패닉 상태입니다. 문체부는 압수수색까지 당했습니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공복’ 의식에 상처를 입고 자괴감을 느낀다는 공무원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문제는 공직사회가 손을 놓게 되면 국가 위기가 더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국가 안보 분야나 경제 분야 할 것 없이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가 한 둘이 아닙니다.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해서는 위기가 현실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공직사회가 소명의식을 갖고 자기 몫을 다해 주길 국민은 바랄 겁니다.

김영란법 시행 한 달째입니다. 법 적용을 둘러싼 혼선이 여전하긴 합니다만 우리 사회가 조금씩 적응해 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접대 회식이 줄고 가족·친목 모임이 늘었다고 합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됐다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장사가 안 돼 울상 짓는 곳들도 적지 않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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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체로 보면 합리적인 방향으로 ‘조정’을 받는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간 무심코 누리고 행했던 접대와 청탁에 대한 의식 변화도 감지됩니다. 한술에 배부르지는 않을 터입니다.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순기능을 할지는 앞으로 어떻게 더 다듬고 보완하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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