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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최순실 의혹’ 수사, 모양 갖추기에 그쳐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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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관련 의혹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지시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하명이 떨어지고서야 뒤늦게 수사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향후 수사가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넘어설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압수수색 없이 재단 관계자만 잇따라 소환
“재계 주도” 대통령 가이드라인에 멈추면
검찰 존립 기반 스스로 허무는 결과 될 것

지난주 담당 부서인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검사 2명이 추가 투입된 뒤 검찰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일 대통령 지시 후 재단 설립 보고 라인에 있던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2명을 소환한 데 이어 다음 날에는 K스포츠재단 초대 이사장이었던 정동구 한국체대 명예교수 등을 불러 조사했다. 휴일인 23일에는 미르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낸 김형수 연세대 교수와 K스포츠재단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필승 이사 등을 불러 조사했다. 지난달 29일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가 관련 의혹을 고발한 뒤 20일 넘게 미적거리기만 하던 검찰이 수사 속도를 갑자기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검찰 조사엔 강한 수사 의지가 담긴 것으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까지의 의혹 수사는 압수수색에서 시작돼 관련자 소환으로 이어지는 수순이었다. 이번 미르·K스포츠재단 수사는 최씨 등 두 재단 관계자들의 통화 내역 조회를 한 뒤 재단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없이 바로 관련자 소환에 들어갔다. 수사팀은 “압수 영장을 발부받으려면 범죄 혐의를 적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관련자 조사부터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지금껏 손을 놓고 있다가 압수수색은 건너뛰고 뒤늦게 ‘설명 받아 적기’식 조사를 벌이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 소환된 재단 관계자들은 “최순실씨를 모른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특히 이번 의혹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와 차은택 CF 감독은 정확한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각각 독일, 중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검찰은 ‘더블루K’ 고영태 이사 등 5~6명을 출국금지했으나 최씨와 차씨 조사 없이는 의혹의 전모를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다. “늑장 수사로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주는 것 아니냐”는 야당 주장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하루속히 최씨 등 핵심 관련자들의 신병을 확보해 조사할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두 재단에 대해 “경제단체 주도로 설립됐다. 누구라도 자금 유용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 발언은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검찰이 자금 유용 같은 청와대 입맛에 맞는 결과를 내기 위해 형식적 조사를 벌이는 것이라면 조직의 존립 기반을 허무는 결과가 될 것이다. 검찰은 이제라도 특별수사 체제로 전환하고 진상 규명 의지를 수사로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