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북·미 회동, 유연한 대북 전략에 활용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 21일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북·미 접촉은 첨예한 대결 국면 가운데 모처럼 이뤄진 대화였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한 일이다.

한·미 외교 당국은 이번 회동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다. 미국 측 참가자들이 길게는 20년 전 대북 정책을 담당했던 전직들인 데다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라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북측 면면을 보면 얘기가 다르다. 대표로 나온 한성렬 외무성 미국 국장과 장일훈 유엔 대표부 차석대사는 명실공히 미국과의 접촉 및 협상을 담당하는 핵심 당국자다. 이런 인물들의 인식과 전략이 북·미 관계, 나아가 북핵 문제까지 영향을 줄 거라는 건 불문가지다. 이번 회동을 민간 전문가 간 접촉을 의미하는 ‘2트랙’이 아닌 ‘1.5트랙(반관반민)’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예상대로 이번 회동에서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진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회동이 오바마 행정부든 아니면 차기 정부의 대북 당국자 간 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미국 측 참석자들은 북측 의사를 정리해 차기 행정부에 전달할 게 분명하다.

그간 오바마 행정부가 채택해온 ‘전략적 인내’ 정책은 북한 핵 및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 대화 없는 일방적 제재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현재 한·미 양국은 한마음으로 대북제재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현 상황에서는 이 같은 제재가 불가피하지만 이 역시 대화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각에선 김정은 정권을 압박해 내부로부터 무너뜨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외국인들이 전하듯 김정은 정권의 붕괴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

현재로선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는 게 한반도 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이며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 외부 세계의 접촉면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번 말레이시아 회동이 유연한 대북 전략 수단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