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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민주화·고도성장 앞세워 대한민국 매력 뽐낼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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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호 11면

조현동 공공외교 대사가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8층 사무실 그림 앞에 섰다. 동양화가 한정희씨의 수묵화다. 주한 외교관들에게 한국 미술의 멋을 설명하기 좋다고 했다. 최정동 기자

#‘아이 머리만 한 배가 정말 맛있네’. 마영삼 주덴마크 대사는 2014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덴마크 왕실에 나주배 두 개를 보냈다. 맛을 본 덴마크 왕실의 찬사가 이랬다고 한다. 그렇게 덴마크와 연을 맺은 나주배가 덴마크 수출 길을 찾았다. 마 대사와 강인규 나주시장이 2년간 협업 노력한 결과다. 나주시와 코펜하겐·해더슬레브시는 지난주 나주배 시식이 포함된 한국주간 페스티벌을 열고 경제협력 및 우호협약을 체결했다. ‘나주배 2알 외교’의 성공인 셈이다.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치맥 파티 열기, 부산의 대학생들과 찜질방 토크하기, 제주도에서 해녀 체험하기. 이젠 한국 국민에게 익숙해진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의 행보다. 그와 관련된 기사엔 이런 댓글들이 많이 붙는다. “저 형, 왠지 좋다.” “미국이 한국에서 탄저균 실험 어쩌고 하는데 저 사람은 다르다.”


#27일 오후 7시30분.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 콘서트홀. 엘리자베트 베르타뇰리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 등 12명의 주한 대사와 배우자들이 ‘그대 있음에’ 같은 한국 가곡을 부른다. 주한외교단 합창단과 유니세프 합창단의 콜라보 한국 공연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비중이 점점 더 커져가는 ‘공공외교( Public Diplomacy)’의 사례들이다. 핵심 덕목은 상대 국민의 마음을 사는 것. 군사·경제력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국가의 힘(하드 파워)만으론 자국 이익 도모란 외교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국제사회 리더들이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외교 방식이다. 가치, 문화 같은 소프트 파워로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상대 국민의 공감을 얻는 것. 이게 협상·교섭이라는 기본 외교 활동에 더해질 때 국가 이익은 배가된다. 우리 정부도 지난 8월 국제사회의 이 같은 외교 트렌드에 본격 합류했다. 2010년 ‘공공외교 원년’을 선포한 지 6년 만에 ‘공공외교법’ 제정으로까지 진화한 것이다. 공공외교의 모토는 ‘국민과 함께, 세계가 신뢰하는 매력한국’. 법 시행에 맞춰 정부는 지난 3월 조현동(56) 전 워싱턴 정무공사를 1호 공공외교대사로 임명했다. 조 대사를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만났다.


[일본의 벚꽃 선물도 대미 공공외교]


-우리 공공외교가 선진국에 비해 100년 늦었다고들 합니다.“20세기 초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식민지 활동을 공공외교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렇죠. 미국의 평화봉사단 활동이나,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 운영 등만 놓고 볼 때도 선진국의 공공외교 역사는 꽤 깊습니다. 근데 이들이 공공외교 조직을 갖춘 건 10년 안팎입니다. 21세기 국제정치가 기존의 강성 파워가 아닌 연성 권력으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고, 이 둘을 결합한 스마트 파워가 중요하다(조셉 나이)는 주장에 모두들 수긍한 거죠. 공공외교를 법으로 정해 놓고 정부와 지자체, 민간의 활동을 체계적·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한 건 우리가 처음입니다. 직제 제정 전, 마영삼 대사가 2011년부터 공공외교대사 ‘임무’를 부여받아 기초를 닦아 놓았고요. 늦긴 했지만 우리의 경제 발전처럼 효율적으로 따라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


-G2로 부상한 중국, 보통국가로 올라서려는 아베 신조의 일본이 공공외교에 부쩍 공을 들이는 것 같은데.“사실 일본이 1912년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 벚나무 3020그루와 3000그루를 각각 보내 심은 것도 나름의 공공외교입니다. 워싱턴 벚꽃축제 역사도 114년이 된 거죠. 일본과 전쟁을 치르고도 일본에 대한 미국 조야의 정서가 우호적인 배경이 아닐까요. 간만에 장기 집권 기회가 생긴 아베 총리가 여론 형성의 중심지인 미국을 중심으로 공공외교 에너지를 집중 투입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과거사 미화에 집중한다는 비판의 보도도 봤습니다만. 중국도 투입 예산은 가려져 있지만, 일종의 문화원인 ‘공자학원’과 ‘공자학당’의 숫자만 134개국 1500개에 이릅니다. 그 의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죠.”

1 ‘나주배 두 알 외교’로 덴마크에 나주배 수출 길을 연 마영삼 주덴마크 대사. 2 지난 5월 부산 해운대 스파랜드의 야외족욕장에서 대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 3 지난달 30일 창원에서 열린 K팝 월드페스티벌엔 예선(64개국 1만2000명 참가)을 거친 외국인 15명이 참가했다. [중앙포토, 사진 창원시청]

[예산 142억원, 일본의 40분의 1]


실제 우리 공공외교 예산과 조직의 규모는 작다. 미국의 경우 9·11 테러 이후 공공외교 강화에 나서고 있는데, 국무부 내 공공외교담당 차관, 차관보 3명을 두고 있다. 각 지역국에도 공공외교 전담자가 있다. 중국은 외교부가 방향을 제시하면 공공외교판공실 내 ‘공공외교협회’가 공공외교를 실행한다. 현재 협회장은 리자오싱 전 외교장관. 예산의 경우 미국과 영국이 연간 각 10억 달러, 독일과 프랑스는 8억 달러, 일본은 4억 달러이고 스웨덴은 5000만 달러, 우리는 1000만 달러(약 142억원)다. 일본의 40분의 1이다. 조 대사는 “우리의 경제, 예산구조 상황이 있는 만큼 같은 물량 공세로 해나가긴 힘들다”면서 “선택과 집중으로 한국의 매력 포인트를 최대한 활용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역점을 두는 활동이라면.“공공외교법상 임무로도 규정돼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 싱크탱크, 개인 등 공공외교 행위자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조율하는 일입니다.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협업해 최고의 시너지를 내도록 하는 거죠. 9월 말 창원에서 열린 ‘K팝 창원 월드페스티벌’에서도 그 희망을 봤는데요. 올해가 6회째인데, 64개국 84개 재외 공관에서 주관한 예선에 1만2000명이 참가했습니다. 시너지를 제대로 낸 거죠. 창원이 K팝의 메카(성지)가 돼가고 있다고 해요. 이번에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 창원에 SM타운을 만들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공공외교 자산을 꼽는다면.“K팝, K드라마, K영화 등 우리의 대중문화, K뷰티 등 한류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 한국이 현대사에서 이룬 고도성장과 민주화 등의 업적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가장 부러워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거죠. 국가 간에도 공감하는 자세가 중요한데, 가르친다는 자세보다는 경험을 공유하며 신뢰를 쌓아가야 합니다. 해외의 700만 교포와 해외 봉사자들도 큰 자산입니다. 우리 것을 즐기게 하는 게 우리를 알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데, 주한 외교관들의 한국 가곡 부르기 행사도 그 일환입니다. 북핵 문제와 통일 등 우리의 정책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것도 정책공공외교란 측면에서 중요하고요. 이런 사항들을 고려해 정부와 지자체, 재외공관이 시행할 종합적인 기본계획을 담은 5개년 계획서를 내년 1분기엔 내놓으려 합니다.”


‘한국은 값싼 임금으로 생선을 손질해 파는 나라.’ 3년 전까지 네덜란드의 초등 6학년 교과서에 실린 한국 소개 글이다. 2013년 7월 개정판엔 ‘최첨단 스마트폰과 디지털 TV를 만드는 부국’으로 바뀌었다. 스페인 중·고교의 80% 이상이 채택하는 교과서엔 ‘경제적 이민 발생국’ ‘한때 중국 영토의 일부였던 나라’로 돼 있었다. 지난해 9월 개정됐다. 이 역시 공공외교의 몫이다. “전 재외공관과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모든 나라의 교과서를 전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교과서 개정 주기가 10년 정도라 곧바로 시정되진 않는데, 한국이 제대로 알려지도록 집요하게 설득하고 있습니다.”


-심은경이란 이름으로 한국민에게 다가간 캐슬린 스티븐슨 전 대사도 그랬지만, 마크 리퍼트 미 대사의 한국 내 활동을 공공외교의 열성 사례로 꼽는 이들이 많습니다.“맞습니다. 리퍼트 대사 스스로도 공공외교에 최역점을 두고 있다고 얘기하고요. 근데 서울에 있는 다른 나라 대사들도 나름의 공공외교를 펼치고 있습니다. 해외 주재 우리 외교관들도 마찬가지고요. 언론이 관심을 덜 갖는 거죠. 그런 면에서 공공외교의 효과도 국력과 같이 간다고 할까요. 다만 우리의 경우 하드 파워에 비해 소프트 파워가 못 미치니까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고요. 이미 하드 파워에서 최강인 미국은 조금만 해도 주목이 되죠. 한국이 두 가지가 합해진 스마트 파워를 함께 신장시켜 나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조 대사는 공공외교 모토 가운데 ‘국민과 함께 하는’이란 대목을 강조했다.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공공외교관이란 점에서다. 공모를 통해 선발된 ‘국민 모두가 공공외교단’ ‘청년 공공외교단’ ‘시니어공공외교단’ 등 24개 팀 200여 명이 각종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외교를 펼치고 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활동도 그중 하나라 한다.


[몽골인구 10분의 1 한국서 1년 이상 체류]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체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바운드(Inbound) 공공외교’는 더 중요합니다. 몽골의 경우 300만 인구 중 한국에서 1년 이상 살아 본 이들이 30만 명입니다. 국민의 10분의 1이 일정 수준의 한국말을 하고 한국을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분도 많지만, 한국에서 씁쓸한 추억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고 해요.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10명 가운데 7~8명만 좋은 이미지를 갖고 떠나도 성공이라 봅니다.”


-‘한국어를 못하는 한국 전문가’가 많다는 비판도 나옵니다.“해외에서 한국의 문화·역사를 연구하는 외국인들은 한국어는 물론 한자까지 공부합니다만, 국제정치 틀에서 한반도를 연구한 분들 중에 한국어를 잘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스티븐 보즈워스 전 대사 같은 1세대들이 그렇죠. 이제 바뀌고 있어요. 1999년 출범한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이시형)이 꾸준히 힘써 한국 강좌 개설 대학이 99개국 1292개 대학으로 늘었고요. 특히 한반도 전문가 양성 측면에선 ‘차세대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교포도 포함된 20·30대로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전문가들입니다. 최근에도 한 팀이 서울을 다녀갔어요.”


“공공외교법 발효 이후 국내외 각 단체, 개인들의 공공외교 활동 지원 요청이 쏟아지는데 이를 다 수용할 수 없어 안타깝다”는 조 대사는 “공공외교가 단기 성과보다는 멀리 보고 투자하는 성격이 있는 만큼 씨앗을 뿌리고 묘목을 심는 자세로 기반을 닦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수정 국제 선임기자 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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