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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의 시시각각

애먼 사람 잡으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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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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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올봄 법조계에선 요상한 소문이 한때 돌았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동반 퇴진할지도 모른다”는 밑도 끝도 없는 얘기였다. 지난해 7월(김현웅 장관)과 12월(김수남 총장)이라는 취임시기를 고려하면 “상식 밖의 관측”이었다. 저급한 정보시장에서나 떠돌 만한 루머의 중심에는 청와대의 흔적이 스며 있었다. 주식 대박 사건의 장본인인 진경준 전 검사장에 대한 법무부와 검찰의 일 처리가 매끄럽지 못했다는 불만이 깔려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를 놓고 의견 대립을 했던 김 총장과 우병우 민정수석 사이에 앙금이 남아 있다는 말도 나왔다. 7월 중순 우 수석 처가의 서울 강남 건물 매각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면서 루머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최순실 사건 핵심 피한 수사 우려
정치적 책임 검찰로 넘겨선 안 돼

하지만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최근 비슷한 말이 또 나오고 있다.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해석과 함께. 김 총장 임기는 대선일(12월 20일)을 19일 앞둔 12월 1일에 끝난다. 대선 정국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검찰이 인사 때문에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는 김 총장 취임 전부터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 진부한 스토리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정치권과 법조계의 수군거림은 계속된다. 청와대가 국면 전환을 위해 사정라인에 대한 인적 쇄신 작업을 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애먼 사람이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달리 해석하면 검찰로 책임을 떠넘기는 숨은 권력이 있다는 의미다. “사고 치는 사람 따로 있고, 책임지는 사람 따로 있다”는 불만이 나올 만하다.

무슨 말일까. 홍만표·진경준 사건에 이은 우 수석의 비리 의혹은 정국의 발목을 잡았고, 이 때문에 검찰 위상은 바닥을 칠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주문으로 시작된 롯데 수사도 별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최순실씨가 ‘비선 실세’라는 별칭과 함께 게이트의 핵심 인물로 불거진 것이다. 결국 민심 수습용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말이 스멀스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현 정부의 독특한 상황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손발은 꽁꽁 묶어 놓았다가 정치적 책임은 검찰에 지우려 하는 것이다. “최순실은 대통령 연설문을 고쳐 놓고 문제가 생기면 애먼 사람을 불러다 혼낸다”는 전 미르재단 임원의 주장처럼 말이다.

당장 최순실 사건도 청와대의 간섭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의 ‘예외 없는 처벌’ 발언에 혼란을 느낄 것 같다. 정치적 수사(修辭)일 가능성도 커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번 사건의 핵심인 최순실을 제쳐 놓고 재단 임원과 공무원들만 부르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와 다름없어 보인다.

지금 시중에는 최순실을 둘러싼 별의별 소문이 돌고 있다. 정윤회 문건 유출로 구속됐던 박관천 전 경정의 주장처럼 ‘권력 서열 1위’인 최순실을 정점으로 한 정치권력의 먹이사슬 구도가 괴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릴 정도로 유포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이 2016년 세계 경제 순위 11위의 국가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뿐이다.

우리에게 박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어떤 존재일까. 전직 국회의원 출판기념식에서 배설물처럼 토해 나오는 막말 퍼레이드에 참석자들이 환호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 정권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완장을 차고 “국정원장도 하고, 법무부 장관도 하고, 기재부 장관도 하자”는 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거짓말 논란에 휩싸인 한 개그맨이 급기야 정도전과 조광조까지 들먹이며 “말할 수 있어야 그것이 국가의 기본”이라고 거들먹거리게 하는 것은 역사의 퇴보다. 그 중심에 청와대가 있는 것이다.

현 정부가 내년 대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눈앞에 흐트러진 부산물부터 처리해야 할 것이다. 민주와 법치를 내세우면서 국민의 요구와 국회의 결정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것은 민주적이지도 공화적이지도 않다. 지속 가능한 국가 혁신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