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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동네북’ 갤럭시 … 코카콜라를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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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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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삼성은 억울할지 모른다. 사방이 온통 적인 분위기다. 삼성은 8월 24~30일 3건의 발화 사건이 터지자 갤럭시노트7의 출하를 중단했다. 반면 4건의 아이폰7 발화 사건에도 애플은 묵묵부답이다. 특히 자동차 속의 옷 안에 넣어둔 아이폰7에서 불이 나 자동차까지 태운 호주 사건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하지만 세계 주류 언론들은 애써 외면한다. 구글에 ‘아이폰7 폭발’을 검색하면 263만 건이 노출되지만 ‘갤럭시7 폭발’을 치면 무려 970만 건이 쏟아진다. 미국 언론들은 갤노트7의 ‘열 손상 이슈(heat damage issue)’에 ‘갤노트7 폭발’이란 섬뜩한 제목을 달았다.

 삼성은 갤노트7의 발화 원인을 정확히 밝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진범 찾기는 쉽지 않다. 우선 발화 환경이 너무 다양하다. 밤에 충전 중이거나 배송 과정에서 불이 나기도 했고,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삼성이 폭발을 재연해 내지 못하면 소비자의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기 어렵다. 내년 초의 갤럭시S8 조기 등판도 무리다. 신기술인 홍채 인식이나 방수·방진이 발화와 무관하다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꼭 1년 전 ‘포브스’ 한국판에 실린 기사다. 2013년 1월 7일 미국 보스턴을 이륙하려던 일본항공(JAL) ‘787 드림라이너’의 화물칸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 며칠 뒤 전일본공수(ANA)의 787기도 배터리에서 불이 나 비상착륙했다. 이후 ‘꿈의 비행기’라던 보잉 787은 전 세계 공항에서 이륙이 금지됐다. 미 항공 당국은 UL(미국 표준 및 인증 기관)에 의뢰해 일본 유아사에서 납품한 787기의 리튬이온 배터리의 과열을 발화 원인으로 밝혀냈다. 배터리는 재설계되고 실제 환경에서 다시 엄격한 테스트를 거쳤다. 드림라이너가 불과 4개월 만에 운항 재개 허가를 받은 것은 기적이었다.

 삼성도 내부 전문가와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을 동원해 화재 원인 찾기에 올인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원인을 밝혀낸들 해외 소비자들이 선뜻 믿어줄지 의문이다. 한 리튬이온 배터리 전문가는 “어쩌면 갤노트7 발화 원인은 영원히 미궁에 파묻힐지 모른다”며 이렇게 조언했다. “차라리 미국·유럽 소비자들이 신뢰하는 모든 국제 인증 기관을 원인 규명 공동 작업에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최종 발표 때 이 기관 대표들이 모두 배석하면 소비자의 믿음을 되찾는 데 힘이 될 것이다. 삼성도 이제 갤럭시의 신비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 차기 모델은 더 많은 시제품을 공개된 환경에서 안전성을 테스트해야 한다. 터지지 않는 배터리가 생명인 시대다.”

 1999년의 코카콜라 리콜은 삼성이 참고할 만한 사례다. 당시 벨기에는 다이옥신 오염 파동이 있었다. 때마침 벨기에 초등학생 101명이 복통을 일으켰다. 하필이면 대부분 콜라를 마신 게 문제였다. 코카콜라가 곧바로 250만 병을 회수하면서 난리가 났다. 콜라병을 밀봉할 때 넣는 이산화탄소의 오염 등 온갖 마녀사냥이 난무했다. 하지만 한참 뒤에야 진범이 밝혀졌다. 콜라가 아니라 ‘집단사회 병’이었다. 정밀 조사 결과 한 아이가 복통을 호소하자 다른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전염돼 똑같이 배가 아팠던 것으로 결론 지어졌다. 그 이후 코카콜라에 대한 신뢰는 하늘을 찔렀다. 13년 연속 브랜드가치가 세계 1위를 자랑했다.

 삼성의 경계 대상도 조급증이다. 돌아보면 2차 리콜을 너무 서둔 게 재앙을 불렀다. 이미 ATL 배터리도 2건의 발화가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 게 패착이었다. 연말 삼성에서 인사 피바람이 불 것이란 소문의 진앙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진짜 발화 원인을 놓치면 갤럭시 신화는 부활하기 어렵다. 애플은 아이폰이 말썽을 부릴 때마다 “사용하는 데 별문제 없다”며 소비자 잘못으로 떠넘기기 일쑤였다. 삼성이 묵묵히 사고 원인을 밝혀내야 애플과의 차별화가 가능하다. 그래야 코카콜라처럼 다시 일어서고 “삼성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트7을 희생했다”(타임지), “비평가들이 틀렸다. 삼성 리콜은 옳았다”(포춘지)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