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드론 등장 후 사라진 ‘장대 카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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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출입’.

별다른 출입처 없이 집회나 시위 현장,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취재하는 사진기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아스팔트 출입을 하다 보면 아스팔트뿐 아니라 ‘옥상 출입’도 자주 하게 됩니다. 행사의 규모나 인파, 행진의 대열을 잘 보여주려면 높은 곳에서 내려 찍는 하이 앵글의 사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건물 옥상에 올라가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취재 목적을 설명해도 건물 관리 직원은 난색을 표하기 일쑤입니다. 안전사고의 위험 때문입니다. 몇 군데를 돌아도 겨우 한 군데 촬영 허가를 받을까말까 입니다.

올라갈 건물이나 언덕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매년 11월 초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하는 중앙마라톤이 그런 경우인데 스타트 장면을 찍기 위해 크레인과 바가지 차를 몇 대씩 동원하기도 합니다. 촬영용 드론의 등장은 이런 불편함을 어느 정도 해결해 주었습니다. 비행이 허가된 곳이라면 어디든, 언제든 하이 앵글의 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사진은 몇 해 전 인천대교 개통을 기념해 열린 자전거 대회의 출발 직전 모습입니다. 가운데 우뚝 솟은 장대 하나가 보입니다. 4~5m는 족히 돼 보이는 장대 끝에 카메라가 달려 있습니다. 주변에 올라갈 만한 지형지물이 없는 다리 위에서 ‘장대 카메라’는 많은 참가자를 한 화면에 담아내는 꽤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줬을 겁니다.

그리고 얼마 후 드론의 등장으로 장대는 현장에서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그럼 사진 속 사진가는 어떻게 됐느냐고요? 장대 팔아서 드론 샀겠죠. 뭐.

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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