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부채 3조2천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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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실 해운업은 본격적인 추가정리작업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판단된다. 더이상 문제를 외면하거나 방치해둘 경우 그 해결의 방도는 더욱 묘연해지고 해결을 위한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되어있는 것이 해운업의 현실이다.
그리고 올들어 착수한 다른 부실기업 정리과정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듯이 부실정리의 부담은 은행과 정부뿐만 아니라 결국은 국민의 부담과 피해로 귀결되었다. 사태의 귀결이 이처럼 불을 보듯 번연한데도 계속 문제해결을 미루는 것은 책임회피일 뿐,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
지난 84년의 1차 통폐합조치 이후의 경과에서 명백히 나타난 것처럼 해운통폐합은 실패작이었다.
정부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실상을 분석하는데 소홀한채 정리실적에 더 급급한 결과가 오늘의 현실이며, 1차 통폐합은 문제의 정리나 해결에 기여하기보다는 확산에 더 기여한 결과가 되었다.
1차 조치 당시 2조8천억원이던 해운부채가 2년 남짓 지난 지금은 오히려 3조2천억원까지 늘어난 사실이 그것을 단적으로 반증한다.
올들어 정리된 56개 부실기업의 상환유예 총 부채가 4조원이었던 점에 비추어 해운부채 3조원은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같은 부채규모의 급속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처는 물론 관련부처나 은행 등 어느 누구도 이 문제의 해결을 앞장서서 추진하는 자세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언제까지 구제금융과 임기응변으로 끌고 갈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국제해운경기나 기타 외생적 조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지금처럼 문제를 외면한 채 방치한다면 부실은 더욱 깊어지고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1차 조치의 실패가 무리한 통폐합, 정리기준의 미비, 실태분석의 미흡에 원인이 있었던만큼 지금이라도 정밀하게 실상을 다시 파악하고 자산부채의 정확한 실태를 조사한 뒤보다 과감하고 합리적인 재정리 작업이 불가피할 것이다.
물론 이에는 장기적인 해운경기분석과 물동전망, 중장기 선복수요가 전제돼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적 정리기준의 설정과 납득할만한 정리과정이 필수적이다. 부실화의 요인별로 분류, 보다 정밀한 교통정리와 책임소재의 규명도 있어야할 뿐더러 1차조치중 무리와 억지가 있었던 부분은 과감하게 시정하는 일도 긴요하다.
고철과 다름없는 폐선을 인수, 인계하여 치열한 국제경쟁에 내보낸들 결과는 부문가지다. 이런 고철들은 과감하게 스크랩하고 최신장비와 효율을 갖춘 첨단선박으로 대체하는 노력도 있어야할 것이다. 이해가 엇갈린 공동 선사운영도 합리적으로 재정비돼야하며 눈가림에 불과한 해운업체의 자구노력도 보다 강력하게 촉구할 수 있는 새 방안이 마련돼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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