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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NHK방송 취재·작가 정상정 집필…본사 독점연재-하원에서 발해까지… 동양사 5천년의 베일을 벗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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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황하상류의 충적평야, 영하회족자치구의 영하평원과 그에 잇닿은 내몽고 자치구의 하투평원을 두고『새상강남 (장성밖 변경의 풍요한 곡창지대)』이라는 호칭이 있다. 황하는 유구한 혜택을 이곳사람들에게 가져다 주고 있다.
이 새상강남-영하에의 여로는 감숙성의 성도 난주시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들은 난주에서 증기기관차가 끄는 열차를 타고 중국최대의 아치식 철교가 놓인 유원협, 그리고 홍산협, 성경에 걸친 흑산협의 세 협곡을 벗어나 영하회족자치구로 향했다. 황하는 영하에 들어가면 서에 퉁고리사막, 동에 황토고원을 끼고 북류를 계속하여 드넓은 충적평야, 영하평원에 이른다.
영하평원에 들어선 것은 7월 하순의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그에 앞선 1주일간은 거의 초목이 없는 퉁고리 사막과 황토고원.

<수박으로 갈증 덜어>
하순이 되면 이 근처에서도 연일 30도를 넘는 한여름 날씨가 계속된다. 그런데 영하평원은 연간 강수량이 1백50mm에서 2백mm의 극단적 건조지대여서 무더위는 없다.
포플러·버드나무 등의 녹음이 많고, 게다가 전원지대를 종횡으로 달리는 크고 작은 용수로가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수분부족은 영하특산 수박으로 해결한다.
영하평원에서는 6월 하순이 되면 수박이 나오기 시작하여 9월 하순까지는 어느 도시에 가나 국도연변과 자유시장에서 수박을 팔고 있다. 특히 영하평원 남쪽에 위치한 황하연안 중영현은 수박의 명산지.
7월 하순은 바야흐로 그 한창때여서 중영의 거리에는 매일 아침 6시쯤부터 근방의 농가에서 자유시장에 줄을 이어 수박을 운반하여 노점을 벌인다.
자유시장인 큰 거리에 양쪽으로 1백m쯤 빈틈없이 노점이 늘어서고 수박의 산더미가 줄을 잇는다.
중영에선 현재 1만3천무 (약9백10㏊)의 밭에서 연간 평균4십만㎏의 수확을 올리며, 그 절반이상을 북경과 상해등 대도시에 출하하고 있다고 한다.
30도의 더위 속에서 수박은 물 대신이다. 취재팀도 수박신세를 많이 졌다.
영하에는「오보」라 불리는 5개의 대표 산물이 있다. 그 색채의 구색이 이 고장사람들의 자랑거리. 오보란 구기(홍), 감초(황), 하란석(남), 화차이(발채·흑), 양피(백)의 다섯가지. 황금색을 띤 감초는 한방약재로 유명한데 영하평원의 각지에서 볼 수 있다.
하란석은 하란산(황하에 평행으로 영하평원을 남북으로 뻗어있음)의 산중에서 채취되는 남빛에 녹색이 섞인 단단한 돌로 벼루·도장·조각 따위의 상질석재로 진귀한 것. 그 돌로 만든 하란연(하란벼루)은 중국 사대연의 하나로 꼽히며 비싼 것은 한국화폐로 치면 무려 3백만원쯤이나 된다. 영하회족자치구의 수도 은천에서 공장견학을 했는데 남색과 녹색의 자연배색을 잘 다루어 용·뱀·학 등을 끌과 줄칼로 정성들여 새기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작업이었다.

<하란벼루 3백만원>
화차이는 글자 그대로 빛깔과 모양이 머리카락과 아주 흡사하며 1년내 채취되는 자생 산나물. 취재팀도 몇번 맛보았는데 아삭아삭 씹히는 감촉이 좋고, 이것을 먹으면 장수한다는 말이 있는데다가 화차이(발재=축재의 뜻)와 동음이어서 축하잔치 등에 전채로 식탁을 장식한다.
그런데 오보 중에서 황하의 물과 관련이 있는 것은 양피와 구기.
영하평원에서 방목되고 있는 양은 탄양이라 불린다. 황하의 물을 마시고 황하의 사탄 (강 가운데의 모래섬, 또는 강변의 모래톱)에 몸을 문지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오보의 다섯 번 째 것은 영하제일의 특산이라 할 구기(구기자). 구기는 1천년도 넘는 그 옛날부터 자생하였고, 인공재배가 시작된 것은 명나라 시대부터라 한다. 구기의 수확은 6월 중순부터 7월 하순까지.
이 근처는 어느 농가나 지붕이 평면인 토담 단층집이다. 평면인 지붕은 구기자·옥수수·고추 등의 건조장으로 귀중하게 쓰이고 있다.
수확한 구기자는 2주일에서 3주일간 지붕위에서 수분이 없어질 때까지 건조시킨다.
구기자의 효능은 폐·간장·신장의 자양강장, 혈압을 내려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 또는 눈병에도 효과가 있다 한다. <구기의 고장> 중영현에는 그 성분과 효능을 과학적으로 조사하여 가공 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에서는 구기의 성분을 그대로 지닌 갖가지 제품을 가공하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연구소가 개발하여 자랑하는 제품은 구기주, 구기동(구기자 잼), 구기로(구기자 주스), 구기은이(구기자와 목이버섯, 발채 등을 섞은 것)…등. <백약의 으뜸>이라는 구기, 이것도 황하가 주는 혜택의 하나다.

<구기자 잼·주스도>
황하가 주는 혜택의 최대 농산물이라면 밀이다. 밀은 영하평원 전경작지의 면적비율 최고를 차지한다. 특히 은천교외 남쪽 일대가 다수확의 지역이다. 아뭏든 밭의 구획이 넓다. 세로 1백m, 가로 50m나 되는 밭이 멀리 아득히 이어져있는 곳이 상당히 많으며 포플러 가로수와 용수로가 그것을 규칙적으로 구획 짓고 있다.
밀은 3월에 씨를 뿌리고 7월20일 전후에 수확하는 봄밀(춘소맥) 이다. 취재팀이 방문한 7월 하순에는 이미 곳곳에서 거의 수확이 끝나고 건조와 탈곡이 한창이었다.
바심(탈곡)을 하는 방법도 가지가지. 옛날식으로 막대에 판자를 붙인 도리깨로 두들기는 방법, 트랙터로 돌 롤러를 끌고 가면서 낟알을 떨구는 방법, 발로 밟는 탈곡기, 낟알과 짚을 자동적으로 분리시키는 전동식 탈곡기도 있다.
좀 색다른 방법으로는 차가 많이 다니는 한길에 수확한 밀을 펼쳐놓고 지나가는 버스·트럭·승용차등에 깔리게 해서 저절로 탈곡이 되게 하는 노력절감방법도 있다. 그야말로 목가적인 광경.
영하평원이 받는 황하의 혜택은 밀 이외에도 많다. 어떤 것이 있을까? 큰 도시의 자유시장을 기웃거려보면 금방 알수 있다.
은천에서 남으로 차를 달려 40분 거리인 영무현. 한무제시대에 흉노정벌에 나선 곽 거병이 거점의 하나로 삼았다는 역사 오랜 도시다. 이 영무현에 물자교류대회라는 이름을 붙인 대규모 시장이 개설되었다.
이것은 밀베기가 일단락되고 가을 추수 때까지의 좀 덜 바쁜 철에 농촌의 여름축제를 겸하여 열리는 시장인데 이 시기에 몇몇 농촌을 순회한다는 것이다. 영무현에서는 매년 8월상순의 더위가 한창일 때 10일간쯤 열린다.
거리라는 거리는 양쪽에 빈틈없이 늘어선 텐트의 노점으로 차있다. 여느때는 1만명 정도의 도시인데 5배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와글와글.
광장엔 서커스 텐트가 가설되고 극장에선 경극하며 잡기단의 연예가 상연되어 축제무드를 돋운다. 말·소·돼지·나귀등의 흥정도 한다.

<축제겸해 시장 열어>
의료품·일용잡화·전기제품·농기구·안경·우동·만두를 파는 좌판이 있고, 이를 뽑을 때 쓰는 지혈제·쥐약 등을 파는 거리의 약장수 둘레엔 사람들이 겹겹으로 울타리를 치고 있다. 물론 야채·과일의 노점도 즐비하다. 토마토·피망·파·오이·양파·마늘·수박·사과·배·참외·구기자·고량·참깨·유채…수를 헤아릴수 없다. 이것이 모두 영하에서 수확되는 황하의 혜택, 바로 그것들이다.
그야말로<새상강남>. 이날만은 영하의 풍요한 산물과 넘치는 인파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은천시가지에서 동남으로 30㎞. 양쪽으로 펼쳐진 드넓은 논을 바라보면서 비포장도로를 달리자 이윽고 페리의 도선장이 있는 황하에 이른다. 유장하게 흐르는 대하. 황하는 아지랭이로 건너편 기슭이 희끄무레 할 만큼 폭이 넓다.
1㎞이상이나 된다. 멀리 자그맣게 보이는 봉화대가 아지랭이 속에 흔들린다. 여기도 또한 몽고와 마찬가지로 오르도스(악이다사)의 땅으로서 병가필쟁의 요지였다.
페리를 타고 황하를 건너간다. 황하의 중간쯤엔 섬이 많아 물결이 일고 있었다. 의외로 물살이 빠르다. 페리는 물결을 거스르면서 상류를 향하여 엇비스듬히 전진하여 30여분 만에 강을 건넜다.
건너편에서 봉화대처럼 보인 것은 성벽에 둘러싸인 성터였다.
이 성은 횡성이라 하며, 그에 이어진 장성과 함께 명대의 것이라 한다.
횡성에서 시작되는 장성은 풍화가 심하며 특히 정상부분은 사람이 겨우 통행할 만큼 좁게 깎여 나갔다. 장성은 같은 꼴로 허물어진 봉화대를 2백m쯤의 간격으로 배치하면서 한줄기 선이되어 지평선 저 멀리까지 뻗어 있었다.
양편은 끝없는 황토고원. 이 장성은 황토고원을 횡단하여 북경교외의 팔달령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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