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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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양의 겨울은 서양보다 50여일 먼저 온다. 입동(11월8일)이면 벌써 겨울이 시작된다. 서양의 겨울은 동지(12월22일)부터 춘분(3월21일)까지.
계절의 느낌도 동서가 다르다. 우리는 겨울 하면 추위부터 생각한다. 겨울 「동」자도 고형은 물이 얼어붙은 모양이다.
그러나 영어의 겨울을 뜻하는 「윈터」는 「워터」나 「웨트」(wet)가 어원이다. 습기가 많다는 뜻이다. 춥기보다 으스스한 쪽이다. 서양 사람들이 겨울이면 스웨터를 껴입지 않고 어깨나 허리에 걸치고 다니는 것도 다 까닭이 있다. 겉 멋 아닌 기후 습관이다.
서양 사람들의 겨울은 햇볕이 그리운 침울한 계절이다.
실제로 유럽 여러 나라의 겨울은 대서양에서 밀려오는 습기 찬 서풍과 짙은 구름에 휩싸여 있다. 따라서 태양을 볼 수 있는 시간도 2시간 이내다. 12월 파리의 일조시간은 1·5시간, 런던은 1·2시간. 그나마 런던의 도심은 0·6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무렴 서울의 일조시간은 평균 6시간이 넘는다. 실로 축복 받은 겨울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겨울은 너무 춥다. 기상학에서 말하는 「겨울날」(윈터 데이=영도 이하의 기온)이 두 달도 넘는다.
남한의 경우 윈터 데이가 가장 긴 지방은 대관령(1백62일), 그 다음이 청주(1백27일), 세 번째가 서울(1백10일), 네번째가 대구(1백3일)순이다.
두 자리 수자의 윈터 데이를 가진 지방은 광주(97일), 강릉(91일),포항(79일). 유일하게 제주도만 윈터 데이가 없다.
연중 3분의1이 겨울인 셈이다. 춥게 느낄 수밖에 없다.
요즘은 추위에 대한 반응마저 민감해져 통계에 나타난 겨울의 쾌적한 실내온도는 24도 (섭씨)다. 10년 전만 해도 다수 사람이 느끼는 쾌적 온도는 20도였다. 10년 사이에 4도만큼추위에 약해졌다는 얘기다.
생물학자의 말을 빌면 사람과 같은 고등동물은 세포가 호강에 겨울수록 약해진다. 마치 사회가 발달해 복지가 잘되면 인간은 야성미, 활력을 잃어버리는 이치와 똑같다.
그런 겨울은 누가 어떻게 느끼든 어김없이 온다. 춥고 매서운 겨울은 한발, 두발 다가오고 있다.
시인의 영감을 빌면 겨울은 「매운 채찍」이요, 「강철로 된 무지개」다. 푸르른 호수도 벽돌처럼 딱딱하게 만들고, 모든 움직임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시인은 예언한다. 그 딱딱함과 어둠과 멈춤 속에서 『채찍 끝에 목숨이 죽는다 말게/새 봄일제 그 목숨 돋아나나니…』-.
입동과 함께 겨울을 준비하며 우리도 「새 봄의 목숨」을 믿으며 「P·B·셸리」를 생각하자.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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