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잘 날 없는 국회|박보균<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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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3일부터 22일까지 당초 8일간으로 예정했던 국회본회의의 대정부질문이 그 기간의 배를 넘기면서도 끝나지 못하고 있다.
질문 마지막날로 잡은 30일 본회의도 여야 어느 쪽도 원치 않은 과격발언과 이념논쟁으로 중도 좌초되고 말았다.
고함과 욕설, 정회와 협상, 성명전등이 지난 2주일 여의 국회에서 간단없이 되풀이됐고 그 과정에서는 국정의 개선도, 정책의 제시도, 개헌논의의 진전도 없었고 여-야 서로간의 입장확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서로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만 축적하고 모호한 쟁점을 확대·과장·왜곡한 독설과 말꼬리 잡는 식의 저급한 논전 만을 되풀이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서로「기가 꺾일 수 없다」「이 기회에 콧대를 꺾어야겠다」는 속 들여다보이는「기 대결」만 벌였다는 느낌이다.
30일의 본회의광경도 마찬가지였다.
유성환 의원이 주장한 반공을 대신한 통일 국시 론이 신민당 론 이라고 장기욱 의원은 대담하게 발언했지만 그것은 당내에서조차 지적을 받은 무익한 도발 성 발언이었고「살」자로 이어진 심완구 의원의 원색발언은 무슨 결과를 얻기 위한 발언인지도 모를 증오의 표현들이었다.
「기」를 보이고 자기를 과시하는 것 외에 이런 발언이 무슨 정치적 의미가 있으며 그 발언의 논리대로 정치가 나간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를 생각해 보고 한 발언인지도 모호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신민당이 어떤 정당인지를 여당이 여태 모를 리 없는데도 성격을 분명히 하라고 거듭 요구하는 것도 설령 논리는 그렇더라도 문제를 삼기 위한 문제가 아니냐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흔히「신성하다」는 말이 붙는 입법부가 하루 편할 날이 없는, 바람 잘 날이 없는 입법부가 되고, 한두 번 그럴 수 도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던 많은 국민들도 그만 국회가 미워지기까지 하는 상황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드는 것이다.
국회의 모양을 이렇게 만들고 있는 여-야 당사자들은 항간에서, 시정에서 요즘 무슨 말 들이 어떻게 오가고 있는지 대정부질문을 끝내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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