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정회소동 빚은 국회|갈 길 바쁜데 말꼬리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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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가 하루 편할 날 없이 진통을 겪고 있다.
23일의 본회의도 혹시나 했던 신민당의 김현수 의원 질문을 무사히 넘겨 순항하는 듯 했으나 노신영 국무총리의 답변도중 예상 못한 복병을 만나 2차례 정회소동 끝에 결국 일정을 끝내지 못해「바람잘 날 없는 국회」 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노 총리의 답변이 처음 문제된 것은『유성환 의원의 원내발언과 사전 배포된 유인물에 따르면… 인천사태를 민중통일투쟁으로 미화했다』는 대목.
신민당의원들은『유 의원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총리가 왜 거짓 말을 하느냐』고 고함을 쳤고 민정당 의원들은『답변을 왜 방해해. 배포한 원고에 그렇게 되어 있어』라며 맞 고함.
김동영 총무 등 신민당 총무 단이 발언대 앞으로 나가『국회의원이 그 정도도 얘기 못 하면 국회가 있을 필요도 없다』고 소리치자『그 정도면 신문 가십에 날 테니 들어가라』는 등 민정당 의석에서 야유가 터졌고, 이에 신민당의원들은『총리비서실이냐』라는 등 맞 고함.
이어 노 총리가『선택적 국민투표나 거국내각을 운위하는 것은 헌정을 중단시키는 문제를 수반할 우려가…』라고 답변하자 홍사덕 의원(신민)이『뭐요, 헌정중단이라고 했어요』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신민당 측은 일제히 반발.
이중재 의원 등 이『의회에서 헌정중단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고함치자 노 총리는『헌정중단이 아니라 헌정중단의 우려가 있다고 했다』고 맞받아 신민당의석은 더욱 소란.『국민투표를 반대하면 반대기 왜 헌정중단이냐』는 등의 고함이 속출되자 민정당 의석에서『이중재 의원 당신혼자의 국회가 아니잖아』(곽정출 의원)라는 등의 맞 고함이 터져 나와 계속 장내가 소란스럽자 이 의장은 결국 하오 4시54분 정회를 선포.
정회가 선포되자 3당 총무들은 의장 실에서 모두 3차례에 걸쳐 2시간 여의 릴레이접촉을 가졌으나 끝내 무위.
총무회담이 열리는 동안 노 총리는 국회 내 총리실에서 김종호 내무·김성기 법무·이웅희 문공·정재철 정무장관·윤석정 총리비서실장 등과 별도의 구두회의.
1차 총무접촉은 신민당의총결론인『발언취소와 사과가 없는 한 본회의에 응할 수 없다』 는 방침을 김동영 총무가 의장 실에 통보하는 것으로 시작돼 1시간 여만에『의사전달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정정 취소키로 한다는데 3당 총무가 합의했다』고 발표했고 이 같은 합의사항은 윤 비서실장을 통해 노 총리에게 전달.
그러나 노 총리는『정정은 곤란하다』고 난색을 표명, 3당 총무들은 또다시 절충을 모색.
다시 30여분이 지난 뒤 최명헌 의장비서실장은『총리가 충분한 해명을 하고 유감을 표시하는 선에서 회의가 속개될 것 같다』고 발표.
그러나 이를 해석하는데 있어 여-야는 차이를 드러내 김 신민당총무는『발언을 취소 또는 정정하고 사과키로 했다』고 했고, 이한동 민정당 총무는『정 정이나 취소키로 합의한 일은 없다』고 했으며, 김용채 국민당총무는『충분히 해명한다고 했다』고 각각 다르게 발표를 하는 가운데 일단 본회의가 속개.
하오 6시30분 속개된 본회의에서 노 총리는『「헌정중단」이라는 단어에 대해 야당의원들이 많은 노여움을 가지셨는데…합의개헌이라는 국민여망에 부응해 여야가 합의와 타협에 의해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지 이제 갑작스레 거국선거관리내각을 구성하자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이것이 현재 우리가 받들고 있는 헌법테두리 내에서 쉽게 되겠습니까…』라며『따라서 이러한 것을 하다가는 오히려 그러한 우려가 있다는 뜻으로 말씀을 드린 거고 따라서 표현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이것으로 해명에 대하겠다』고 답변.
그러자 김 신민당 총무가 단상으로 달려가며『약속대로 해야지. 없었던 걸로 했잖아요』라고 항의.
그러나 노 총리는『여-야 의원들께서 어떤 합의를 하신 지는 모르지만 저로서는 무슨 합의를 하고 안하고가 있겠습니까』라면서『내 답변 내용에 별 잘못이 없다고 느낍니다』고 단호하게 응수, 회의장은 다시 소용돌이.
이에 이 의장은 노 총리에게 국무위원석으로 가 달라면서 회의를 중단시키고 총무회담을 종용, 양당 총무들은 회의장 밖 복도에서 만나 일단 정회키로 합의.
이어 이 의장은『헌정중단 부분에 대해 총리가「정정」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총무간에 모여졌고 이것이 비서실장을 통해 총리에게 전해졌으며, 또 잘됐다고 해서 속개했다』며『그러나 그렇지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알듯 모를 듯 하게 설명한 후 하오7시쯤 다시 정회를 선포.
2차 정회직후 이 의장의 주재로 민정·신민당총무회담이 의장 실에서 열렸으나 끝내 타결 점을 찾지 못해 하오 9시42분쯤 산회를 위해 속개.
이한동 민정당 총무는『약속대로 해명을 하지 않았느냐. 그 내용이 미흡하면 보충질문을 하라. 그러면 답변하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김동영 신민당총무는『정정하겠다고 했는데 안 했으니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섰고「일단산회」에만 합의, 9시47분 이 의장이 산회를 선포하는 것으로 이날의 국회공방을 마감.
산회직후 이 의장은 다시 민정·신민당총무를 의장 실로 불러 접점방안을 논의했으나 별 무 진전.
김동영 신민당총무는 10여분간의 요담을 마치고『헌정중단 운운을 취소하지 않고 회의 계속은 어렵다』면서『총리가 끝끝내 정정을 거부할 경우 이는 민정당이 모르는, 총리나 권력중심부만이 아는 어떤 음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
김 총무는『10대 국회 때 공화당은 몰랐지만 결국 5·17이 터지고 말았다』면서『헌정중단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선으로 해결되기 전에 국회정상화는 어렵고 정부가 헌정중단을 할 생각이 있다면 국회를 한달 더하나 안 하나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
이어 민정·신민당총무들은 하오 10시28분쯤 의장공관으로 자리를 옮겨 이 의장·최영철 부의장·윤석정 총리비서실장 등과 심야까지 계속 논의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

<안희창·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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