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어떻게 볼까"|전육<정치부 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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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6일 밤 국회의사당에는 또 한차례의 난장판이 벌어졌다. 의사당 복도와 두 회의장(본회의장·참의원 회의장)입구에는「한강30」이란 작전계획에 따라 경찰이 인간장벽을 쌓았다.
여당의원들은 금배지 대신 비 표를 달고 평소 쓰지 않아 곰팡이 냄새가 나는 참의원회의실에 들어갔고 야당의원들은 약 50m 거리로 마주보는 본 회의장과 그 주변에 갇혀 있었다.
민정당 의원들은 지휘부의 명령이 떨어지기 얼마 전까지는 의원 실에 모여 삼성라이온즈와 OB베어스의 대결에 탄성을 질렀고「신호」가 있기 무섭게 금 배지와「비 표」를 갈아 끼는 민첩성을 보였다.
불과 20여분의 작전」이 끝나자 여당의원들은 모두 침울한 표정으로 의사당을 빠져나갔고 야당의원들은 비서들에게 침구를 가져오라고 서둘렀다.
아울러 많은 의원들은 과거 어느 변칙처리 때보다도『우리의 주장이 옳았다』는 주장을 하기 앞서『국민들이 어떻게 볼까』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입을 맞춰 정치가 국민들의 질책의 대상에서조차 점점 멀어 가는 것이 아닌 가고 자책했다.
이런 한편의 연극과도 같은 정치의 비정한 순간들을 보면서 기자는 일종의 비감이라 할까, 울분이라 할까, 감정의 충동을 어쩔 수 없었다. 정치가 무엇이며, 국회란 어떤 곳인가.
30년 전, 아니 그 훨씬 더 전부터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해 왔던 일이 왜 연례행사처럼 벌어지고 그런 일이 수많은 현란한 용어와 표현으로「국민을 위해서」라는 허울좋은 너울을 쓰고 일어나는가. 바로 채 1년 전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예산안 변칙처리를 해 놓고는 당사자나 주변에서는 얼마나 많은 후회와 질책과 반성을 했고 그 만회를 위한 고통과 노력이 얼마나 컸는데도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이래 놓고 다시 여-야는 행위의 시비를 논하고 그것을 또「국민을 의해서」라고 주장할 것을 생각하면 기가 찬다는 말밖에 할말이 없다.
태풍이 지나간 것 같은 민정당 의원실의 TV화면에는 이어 본회의장 요소요소를 무료하게 점거하고 있는 야당의원들의 슬로비디오와 민정당 의원들의 투표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유성환 의원이 수감되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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