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500 경찰 경호 속 "21분만에 상황 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유성환 의원 체포동의 안은 결국 장소를 바꿔 16일 밤 민정당 단독국회에서 21분만에 처 리 됐다.
민정당 측은 3차례의 본 회의장 개의시도가 신민당 측에 의해 저지되자 경찰병력 진입· 비 표 배부 등 사전에 세워 둔「작전계획」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문제의 발언 파문이 있은 지 하루만에 체포 동의 안을 처리했다.

<보도진들 출입통제>
민정당의 장소 바꿔치기 가결작전은 최영철 부의장이 3차 본회의장 진입시도에 실패한 직후부터 시작.
본 회의장 진입에 실패한 최 부의장은 10시5분쯤 회의장 밖으로 나와 부의장 실로 가지 않고 노태우 민정당 대표 위원 실로 들어갔다.
10여분후 본 회의장에 남아 있던 민정당 의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일어나 일부는 대표 위원 실에, 일부는 의원 실에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례적으로 보도진들의 의원 실 출입이 통제돼 때가 왔음을 직감케 했다.
이어 본 회의장에 있는 신민당 의원들을 따돌리기 위해 계속 회의장에 남아 있던 민정당 총무 단이 이 총무를 선두로 빠져 나와 더욱 분위기가 긴장되는 순간 누군가가 『경찰이 들어온다』 는 말과 함께 의사당은 긴박한 분위기로 돌입.
이 시간 8백 명의 사복경찰이 열을 지어 동쪽·북쪽 출입문을 통해「입성」하기 시작해 일부는 대표 위원 실 앞, 일부는 동쪽 복도 등에 배치됐고, 선두는 의원 실 앞에 포진.
민정당 의원들은 이와 동시에 대표위원실과 의원 실에서 각각 비행기그림이 그려진 배지형의 비 표를 배부 받았는데 여기에 걸린 시간은 3분이라는 것.
심명보 대변인은 이때 주변에 있던 보도진들을 각 사 별로 1명씩 선정, 동행토록 조치.
비 표를 받은 의원들은 노 대표를 선두로 사복경찰의 삼엄한 경호 하에 일렬로 의사당 동 측 출입문 앞에 있는 계단을 통해 처리 장소인 2층 참의원 회의실의 뒷문으로 입장.
이때 의원들은 무겁고 침통한 표정이 역 력.

<「무소속」1명 참석>
의원들이 계속 입장하던 중 하오10시42분 최영철 부의장이 의장 석으로 가『의석을 정돈해 주십시오. 성원이 됐으므로 제8차 본회의를 개의합니다』고 사회 봉을 두드렸고 이어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
이기곤 의사국장의 보고가 끝 나가 최 부의장은『국회법 72조에 따라 의사일정을 변경, 국회의원 유성환에 대한 체포 동의 요구서 건을 의사일정1항으로 상정한다』고 말한 후 정부측의 제안 이유 설명은 유인물로 대치한다고 했다.
최 부의장은『국회법 105조 5항에 따라 무기명 투표를 할 것을 선포한다』고 한 후 감표위원으로 정 남·조남조·박재홍·현경대 의원 등 부 총무들을 지명.
회의는 이어『찬성하시는 의원은 한문이나 한글로「가」를 쓰라』는 이 의사국장의 투표방법 설명 및 의원호명에 따라 10시46분부터 투표에 들어가 10시58분쯤 투표를 끝냈다.
투표에는 민정당 의원 1백48명중 이 의장과 최명헌 의장비서실장이 빠졌으나 무소속의 이용택 의원이 참석해 모두 1백47명의 의원이 참석.
최 실장은 뒤늦게 본회의장에서 나오다 비 표를 받지 못해 참석하지 못 했다는 얘기.
최 부의장은 투표가 끝나고 잠시 후 명패수도 1백47개이고 투표수도 1백47명이라고 밝힌 후 하오11시2분『총 1백47표 가운데 가 1백47표로 국회의원 유성환에 대한 체포동의 건은 가결됐다』는 가결공포와 함께 산회를 선포.
이때가 밤 11시3분으로 개의 선언 후 산회까지 모두 21분이 소요된 셈.
산회선언이후 의석에서는 잠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누군가가 조그만 목소리로『잘했어』를 외쳤고, 곧이어 이 총무가 일어나『이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고 인사를 하자 김정남·이범준 의원 등 이『잘했어』라고 응답.
이어 의원들은 들어온 길대로 다시 퇴장하기 시작했는데 역시 무거운 표정.
의원들은 1층으로 내려와 대표위원실과 총장실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곧 북측 문을 통해 퇴장. 민정당이 이날 중 처리를 강행한 것은 유신이 일어난 「10·17」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얘기.

<버스 20대 타고 도착>
정각 밤10시30분. 어디선가 경찰대형버스 20대가 의사당 뒷마당으로 달러와 1천5백 명의 사복경찰을 내려놓았다.
웃도리를 베이지 색으로 통일한 이들 중 8백 명은 하차하자마자 의사당 앞쪽 현관문·뒷문·우측 문 등 3개 문을 통해 일제히 의사당 내로 뛰어들어 신속하게 본 회의장 입구, 참의원 회의실 입구, 현관에서 여당의원휴게실로 통하는 복도 등 목표지점에 배치되고 나머지 7백 명은 건물 밖에서 의사당 내로 통하는 모든 입구에 배치됐다.
2층 로비의 본 회의장 입구·맞은편 참의원 회의실 입구·구내식당 앞쪽에 ㄷ자 형으로 진을 짰고 참의원회의실을 중심으로. 1, 2, 3층 복도를 순식간에 완전장악.
4∼5열 종대로 늘어선 이들은 복도 통행을 차단하고 신민당 의원들은 물론, 비 표를 붙이지 않은 사람들이 참의원 회의실로 접근하는 것을 철저히 봉쇄.
서울시내 각 경찰서에서 차출된 것으로 알려진 경찰들은 하루 전인 15일 밤「한강30호」란 작전 명으로 도상훈련을 실시했다는 후문.

<소방호스로 물 뿌려>
이때 본회의장의 민정당 의원들이 모두 빠져나갔고 신민당의원들은 당초 진형(?) 을 유지한 채였으며 국민당과 민중 민주당 의원들이 의석에 앉아 담소 중.
다소 이상한 낌새를 채고 의사당 구내를 둘러보던 신민당의 신순범·김형래 부 총무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뛰어들어오며『사복이 온다』고 고함을 치는 순간부터 장내는 갈팡질팡. 20여명의 의원들이『어디야 어디』하며 뛰쳐나왔을 때는 이미 팔 장을 낀 5∼6명의 경찰포진이 완료된 상태.
신민당의원들은『길 비켜 이×들아』『무엇 하러 왔어』등 호통을 치며 몸으로 밀어붙이기도 했으나 역부족. 한순간 신민당의원들은 경찰동원이 자신들을 본회의장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것인지, 제3의 장소와 차단하기 위한 것인지, 제3의 장소는 어디인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고함만 쳐 댔다.
곧이어 누군가가 『민정당 의원 실이다.』고 외쳐 의원들은 경찰이 막지 않고 있는 의 장실 쪽 문을 통해 1층으로 돌진.『나쁜×들아』『날××야』등 욕설을 퍼부으며 1층으로 뛰어내려 온 의원들은 민정당 의원 실로 통하는 복도 역시 경찰이 차단하고 있자 더욱 흥분.
이때 김형래 부 총무가 신민당 총무 실 쪽으로 달려가 복도 벽에 설치된 소방호스를 풀어 10여m쯤 끌고 경찰스크럼 3m쯤 전방에서 물줄기를 뿜어 댔다.
김 부 총무를 거들던 몇몇 의원들이 경찰들이 안돼 보였던지 만류하자 김 부 총무는『우리의 상대가 사실은 당신네들이 아니 야. 미안하네』라며 물줄기를 경찰머리 위쪽으로 넘겨 민정당 의원 실 앞 복도 쪽으로 발사.
사무처 측의 긴급조치로 물이 끊겼을 때쯤 1층 복도에 모여 있던 의원 및 보좌관들 사이엔『이미 가결 선포됐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또 다시 고함·욕설들이 난무.
신민당의원들은『동료의원 목 떼는 철면피야』『백 번 투표해도 무효야』『국회는 다 끝났어』 라는 등 아우성을 치다 10시55분쯤 홍사덕 대변인·김정길 의원 등 이『본 회의장으로 가자』고 해 모두 이동.
본 회의장엔 신민당의원 50여명이 계속 당초대로 의장 석을 점거한 채였다.
경찰진입소식에 이민우 총재는 쇼크, 혈압이 올라 지하의무실에서 치료를 받았고 부 총재단 및 김 총무를 위시한 50여명은『우리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일수 있으니 본회의장을 지키자』며 의장 석 점거대형을 계속 유지.
그러나 이때는 참의원 회의실에서 민정당 의원들만의 투표가 한창 진행중인 때였다.
밖에 나갔던 의원들이 다시 합류했을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한 상대로 점거를 풀고 모두 의석에 착석.
곧이어『끝났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모두들 허탈한 모습으로 한동안 침묵. 그런 중에도 『저들로 하여금 제3의 장소를 택하는 구차스러운 모습을 연출시키게 한 것은 일단성공』이라며 자위하는 모습도.

<의총 열어 농성 결정>
이어 밤 11시23분부터 신민당의원들은 본 회의장에서 비참한 분위기 속에 의원총회를 시작.
김 총무는『만행을 막아 보려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무겁게 말문을 연 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본인의 덕과 능력 부족 탓이다. 총무 직을 너무 오래 했다는 생각도 든다』고 사의를 표명.
그러나 김 총무는 유성환 의원과의 통화내용을 전하는 순간 울음을 참지 못하고 한동안 훌쩍이다 울먹이는 목소리로『유 의원은 자신을 위해 싸워 준 데 대해 고맙다고 전해 달라면서 감옥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겠으니 동료의원들도 꿋꿋이 싸워 달라고 했다』고 전언.
이민우 총재는『이 며칠동안에 이뤄진 일은 각본에 의한 것』이라면서『자신들의 내각제안을 힘으로 밀어붙이기 위한 전초전』이라고 규정.
이 총재는『민정당은 지금과 똑같은 수법으로 자기 안을 처리하고 불법적인 선거법을 이용해 재집권, 수상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체제를 꾸미려는 게 분명하다』고 공격.
이 총재는『유 의원은 이 과정에서의 첫 희생자다. 그와 똑같이 희생하겠다는 각오로 싸워야 한다』면서『비분 강개해 사표를 낼 수도 있으나 앞으로 또 큰일들이 있는 만큼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갖고 임하자』고 강조.

<경호원 발동에 서명>
이재형 의장은 하오5시10분쯤 1차 진입 시도가 좌절된 후 6시55분쯤 신민당의원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사복경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기습적으로 2차 진입을 시도했으나 역시 무위.
이 의장은 7시7분 국민당 의석 쪽으로 가서『미안하다』며 몇몇 의원들과 악수한 후 신민당 의원 쪽을 향해 『정말 그럴 거요』 라고 말한 후 국무위원출입문으로 퇴장.
이 의장은 잠시 후 의장 실에서『대통령을 직접 만나 얘기는 못 드렸지만 이번 문제의 처리에 대한 나의 진지한 의견을 보고 드렸더니 「7년 단임을 하고 그만 두는데 어느 틈에 용공세력이 이렇게 잡초처럼 우거졌다. 임기 중에 이러한 잡초는 한 포기라도 뽑아 내야겠다」고 하시더라』고 소개.
이 의장은 진입시도로 충격이 오는 듯 청심환과 구심 제를 복용했는데 9시30분쯤 경호 권 발동 요청에 서명한 후『삼우제를 지낼 때는 온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가지』라며 지하실 문을 이용, 퇴청.

<야측 교란 양동 작전>
제3차 시도는 하오9시55분쯤 최영철 부의장이 의장 전용 출입문 대신 국무의원 출입문 족으로 진입하면서 시작됐으며 동시에 경위들이 반대편 출입문 쪽으로도 들어오는 등 야측을 교란하는 양 동 직전.
당황한 신민당의원들은『무슨 작전이 있는 모양인데』라며 양쪽으로 몰려가 저지. 의장출입문 쪽에는 이기택 부총재 등 이 의자4개로 바리케이드를 구축하는 등 신민당 측의 전력분산이 이뤄졌고 민정당 의원들도 3개조로 나눠 신민당의원들과 일전 불사할 태세를 보이는 듯 심리전도 범행.
김 신민당 총무는 의사국장에게『경호 권 발동 없이는 못 들어와』라고 호통을 쳤으며 의사국장은『의장의 지시다』라고만 대답.

<"결국은 야당 도운 것">
민정당의 노태우 대표는 17일『체포동의 안 처리 강행은 야당을 몰아친 게 아니라 야당을 살린 것』이라며『운동권으로부터 자기 힘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야당을 대국적인 입장에서 도와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
노 대표는 『12대 국회가 출범한 이래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참아 왔다』면서『최근 헌특 문제에 있어서도 장외의 안 된다는 말 한마디에 물거품이 되는 것을 보고도 참았으며 개인적으로 좌절감마저 느꼈다』고 술회.
노대표는 『심지어 정치적 자질이 나에게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으며 이를 전두환 대통령에게 고백도 했었다』며『전대통령께서는 그럴 때마다 잘 참았다며 격려와 위로를 해주어 다시 용기를 되찾았다』고 부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