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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정미조 가수·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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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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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조
가수·화가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 김소월(1902~34), ‘못 잊어’ 중에서

어린 시절 영화로 만난 소월
내 노래 인생을 꿰뚫을 줄이야…

시인 김소월을 만난 건 우연이었다. 초등 6학년쯤 됐을까. 아버지께서 김포에서 극장을 하셨는데, 그때 그곳에서 김진규 주연의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를 봤다. 소월의 시를 주제로 한 사랑영화였다. 김진규씨의 좋은 목소리로 듣는 소월의 시에 단박에 매료됐다. 어린 나이에도 구절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어쩌면 저리 아름다울까, 소월의 모든 시를 사랑하게 됐다. 한국인에게 친숙해 인용하기가 계면쩍지만 소월은 분명 내 첫 번째 시인이다.

소월은 1972년 다시 내게로 왔다. 데뷔곡 ‘개여울’도 소월의 시다. 올해로 45년째 불러왔지만 언제 불러도 즐겁고 새롭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덕분일까, 지난봄 37년 만에 새 앨범을 내고 무대에도 다시 서게 됐다. 지금 소월에게 ‘개여울’을 불러드리면 뭐라고 하실까. ‘개여울’도 좋지만 ‘못 잊어’는 더욱 좋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이 한 구절에 담긴 비의(悲意)를 보라.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묽어지는 게 세상사 아닌가.

정미조 가수·화가

못 잊어
-김소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우리다

그러나 또 한편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