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자세 강경…정국위기 고조|유성환 의원 구속영장이 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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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 유성환 의원을 정부·여당이 구속키로 함으로써 정국은 폭풍에 휘말렸다. 민정당이 유 의원 구속을 위한 정부의 체포동의 안을 근일 중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하고 신민당이 극한 저지한다는 방침을 세움에 따라 여야간에는 격돌 외의 선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14일 신민당 유성환 의원의「반공」과「통일」에 관한 발언으로 인해 빚어진 국회 본회의 중단사태는 전날 김현규 의원의 발언, 정회 때와는 달리 민정당이 이를 계기로 신민당에 본격적인 사상논쟁을 제기하고 정부가 유 의원을 구속하기로 함으로써 심각한 정도가 보통을 넘어선 것 같다.
정부·여당은 당분간 국회운영이 마비되고 개헌협상이 뒷전으로 밀리는 한이 있더라도 유 의원 문제만은 꼭 매듭짓고 넘어가야겠다는 자세이고, 신민당 역시 이번 일로 기세를 잃지 않으려는 대결 태세를 앞세우고 있다.
민정당이 이처럼 적극공세로 나오는 것은 유 의원의 발언에 문제점이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부각시키는 것이 급진 좌경세력을 혐오하는 국민여론의 지지를 넓히고 궁극적으로는 개헌정국의 주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유 의원의 발언 중 민정당이 문제삼는 대목은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라기보다 통일이어야 하고, 통일이나 민족이라는 개념은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보다 그 위에 있어야 한다』 는 대목과 『인천사태의 구체적 의미는 ①정통성이 없는 이 정부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었으며 ②독점 재벌위주의 경제정책과 민중수탈에 대한 민중의 처절한 생존권 투쟁이며 한반도분단과 강대국의 현상고착 정책에 대한 민중의 자발적·자주적 통일정책이다』고 한 부분.
민정당은 이 주장이 반공국시의 포기를 요구하는 북괴의 주장을 대변한 것이며, 통일을 자유민주주의의 상위개념으로 보는 것은 월남 식의 적화통일이 되어도 좋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고, 인천사태에 관한 이 같은 해석은 완전히 운동권의 민중혁명개념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아무리 원내발언에 면책특권이 있다 해도 운동권의 주장을 국회에서 여과 없이 전달하고 더구나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통일만 되면 좋다는 운동권의 의식화 교과서 제1장을 전파해서야 되겠느냐는 논리다.
무엇보다 민정당은 이 같은 비판이 다수국민의 공감을 얻고 보수야당을 자처하는 신민당이 운동권과 강경 재야와의 연계를 끊도록 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말하자면 신민당을 재야의 논리에서「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민당에 대해서는 당론이냐 아니냐, 반공이냐 용공이냐는 사상논쟁을 걸고 유 의원에 대해서는 강경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다.
민정당은『신민당 내 양심세력이 좌경세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이치호 의원 중집위 발언)하고『좌경분위기가 국회에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노태우 대표)유 의원에 대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분위기가 일찍부터 고조됐었다.
동료의원이 구속되거나 처벌받고 그로 인해 여-야 관계가 격돌하는 한이 있더라도 야당의 기를 꺾고 재야에 경각심을 주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앞세워 의원기소 (의사당 폭력사건)처럼 나중의 부담은 뒤로 미루자는 판단이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신민당은 민정당이 유 의원 발언을 거두절미하여 해석하고 있고 다른「음모」 를 추진하기 위한 의도된 행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신민당은 전체문맥으로 보아 유 의원 발언을 용공으로 모는 것은 어부성설이며, 이 문제로 유 의원을 구속하거나 징계할 경우 당으로서「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록 계파별로, 의원 개개인별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극한 저지투쟁의 외길 선택밖에 없고 정국은 어디로 갈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쉽다.
그러나 신민당 내에는 유 의원의 발언이 사견이냐, 당론이냐 에서부터 시작해 대응전략에 관한 계파간의 이견과 갈등이 많고 이 중요한 시기에 유 의원이 엉뚱한 국시논쟁을 불러일으켜 개헌정국의 초점을 흐리게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당내에는 빨리 이 사태를 해명, 수습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으며 지도부도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면서 뒤늦게 수습에 나서고 있다.
다만 여당의 강 공으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경우 어느 단계까지는 강경 저지로 같은 목소리와 응집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신민당 내에는 유 의원의 발언 내용에 불만을 가진 사람도 많고 평소 한자에 토를 달아 나와 원고를 읽지 않으면 안 되는 등의 발언 형태에 내심 실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강경 재야의 눈치를 보며 정치를 해야 하는 현실에 서글픔을 피력하는 사람도 꽤 있다. 두 김씨까지 유 의원 발언 파문을 못마땅해하고 있다.
정부와 민정당 역시 부담은 있다.
첫째 국회 회기 중 에 원내 발언에 면책특권이 있는 의원을 발언원고를 사전 배포했다 해서 구속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정치문제는 어디까지나 정치로 풀어야지 법적 대응을 할 경우 여론의 역풍을 자초할 수 있고, 가장 시급한 개헌문제보다 이 문제에 더 매달리는 「저의」를 야당이 역공할 때를 생각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민정당이 이 문제를 개헌정국의 주도권 장악에 이용하려 든다는 인상을 줄 경우 그것도 문제다.
이번 사태를 보는 정가의 눈은 양쪽이 다 좀 과하지 않나 하는 시각이 많은 것 같다. 사전에 여당이 그토록 문제를 제기하고 총무회담에서 수정합의까지 보았는데도 유 의원이 그런 발언을 굳이 해 파동을 일으킬 이유가 뭐냐는 지적과 함께 민정당의 대응 역시 문제의 지나친 확대라는 얘기다.
이번 사태가 연말까지의 전체정국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불길한 서막이 아닌가 하는 불안스런 눈길이 많다. <전 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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