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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방 태풍피해 잇따라-6명 사망실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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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호 태풍 차바(CHABA)가 할퀴고 지나간 제주·전남·부산·울산 일대에서 큰 생채기가 났다. 부산에서 3명, 울산에서 주민 1명 등 주민 4명이 숨지고 울산에서 구급대원 1명, 제주에서 어민 1명 등 2명이 실종됐다. KTX 등 열차 운행중단, 항공기와 배편 결항, 정전과 산사태, 주택침수 등이 피해가 잇따랐다.

◇주민·구급대원 등 6명 사망·실종=부산에서만 3명이 숨졌다. 이날 오전 10시40분쯤 부산 강서구 대항동 방파제에서 어선 결박상태를 확인하던 주민 허모(56)씨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오전 10시50분에는 부산 수영구 망미동 한 주택가 2층 옥상에서 강한 바람에 박모(90)할머니가 1층으로 떨어져 숨졌다. 또 오전 11시 부산 영도구 동삼동 고신대 안 캠퍼스 공사장에 있던 타워크레인이 넘어져 오모(59)씨가 숨졌다. 강풍에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면서 인부 숙소인 컨테이너를 덮친 때문이다.

오후 1시10분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천리 현대아파트 입구에서 60m 가량 떨어진 도로변에서 최모(61)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보다 1시간 전에는 울주군 청량면 회야댐 수질개선사업소 앞에서 온산소방서 소속 대원 강모(29)씨가 주민을 구조하던 중 물살에 휩쓸려 실종됐다. 이날 오전 제주항 2 부두에서 5.4t급 연안복합어선 선장 송모(42)씨가 배 사이를 건너다 바다에 떨어지면서 실종됐다.

◇한때 열차 운행 중단=경부고속선, 경부선 및 동해남부선 일부 구간 열차 운행이 한동안 중단됐다. 단전과 선로 토사 유입 등의 발생한 때문이다. 코레일에 따르면 경부고속선 신경주역~울산역 간 단전으로 낮 12시부터 중단됐던 KTX 상·하행 열차운행은 이날 오후 2시34분부터 재개됐다. 사고는 울산역 북쪽 부근 천전과선교(철길 위 도로)에 설치된 난간이 바람에 날려 전차선 위에 떨어져 발생했다. 코레일은 긴급 복구작업을 벌여 이 구간 열차 운행을 정상화했다. 이와 함께 경부선 원동역~물금역간, 동해남부선 호계역~모화역간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열차 운행도 한동안 중단됐다. 폭우로 인한 토사 유입이 원인이다. 이 가운데 경부선 원동역~물금역 구간은 오후 3시 이후 정상화됐고, 동해남부선 경주역~부전역 구간은 선로유실 피해가 커서 복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코레일은 전망했다.

◇부산 마린시티 도로에 물고기 ‘펄떡펄떡’=해안 매립지에 건립된 부산 마린시티 일대는 이날 오전 바닷물이 방파제를 넘으면서 쑥대밭으로 변했다. 집채만한 파도가 연이어 4m 높이의 방파제를 훌쩍 넘으면서 바닷물이 방파제에서 30여m 이상 떨어진 도로에도 넘쳐 흘렀다. 당시 도로를 지나던 차량이 파도에 휩쓸릴 뻔했다. 마린시티 일대 도로는 순식간에 성인 무릎까지 물이 차올라 차량과 일부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이 침수 피해를 겪었다.

주택가 도로에는 파도에 휩쓸려 온 흙과 인도에 깔아 놓은 보도블록 수백 장이 떨어져 나뒹굴었다. 관광객을 위한 해안도로 변 망원경도 부서져 널브러져 있었다. 일부 가로수는 뿌리 채 뽑혀 흉측한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와 가까운 상가 1층의 외부 유리창 상당수가 부서지기도 했다.

특히 도로에 차 있던 바닷물이 빠지자 낚시로 잡을 수 있는 노래미·쥐치·감성돔 같은 물고기들이 도로에 굴러다녔다. 시민 류모(35)씨는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오면서 바닷물이 도로에 넘쳐 고층으로 피신했는데, 쓰나미가 온 줄 알았다”며 “나중에 물이 빠진 도로에 나가보니 물고기들이 펄떡펄떡였다. 일부 시민은 이걸 바구니에 담아갔다”고 말했다.

◇ 15만여 가구 무더기 정전사태=이날 오전 9시를 전후해 밀양·통영·하동·남해 등 경남 7개 시·군 5만2000여 가구에 정전이 발생했다. 오전 9시 20분쯤에는 거제의 한 철탑 전력선이 파손되면서 아주동·옥포동 등 8개 지역 4만7000가구가 정전됐다. 옥포동 거제 대우조선도 정전으로 이날 오전 작업이 중단하고 출근 근로자를 조기퇴근해야 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어시장 일대도 한때 정전되면서 횟집 수족관의 어류가 일부 폐사하기도 했다. 제주 서귀포시 법환동 일대 800여 가구 등 제주 곳곳에서 5만1000여 가구가 정전됐다.

오전 5시20분쯤 전남 여수시 안산동 부영 5차 아파트 770가구와 시전동 일부 지역 등 2000여 가구가 정전됐다. 오전 7시에는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 485가구가  정전됐다.

◇강한 바람으로 해상대교 등 통제=이날 오전 10시쯤부터 부산항대교와 남항대교, 광안대교가 강한 바람으로 차량진입이 금지되는 등 통제됐다. 오전 7시30분부터는 부산 강서구와 경남 거제시 장목면을 잇는 거가대교 양방향, 오전 10시20분부터는 창원시 가포동과 귀산동을 잇는 마창대교 통행이 금지됐다. 이 외에도 광안리해변도로, 마산합포구 해안도로 등 대부분의 해안도로도 오전 중 차량통행이 통제됐다. 교량과 해안도로는 대부분 바람이 잦아든 오후 1시 이후 해제됐다. 울산대교도 낮 1시간 가량 통제됐다.

◇해안가·공장 등 침수 피해=울산에서는 도로와 주택 침수피해 126건이 발생했다. 중구 약사천과 유곡천이 범람하면서 종합운동장, 태화종합시장이 침수됐다. 울주군 삼동면의 보은천도 넘쳐 보은마을 일부가 물에 잠겼다. 현대자동차 1·2공장도 태풍 차바로 인해 공장 생산 라인 가동이 일시 중단됐다. 현대차는 엑센트 등을 생산하는 1공장이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생산라인이 멈췄다. 차가 완성되면 야외 야적장에 임시로 옮겨두는데 비가 많이 와 야적장이 침수되면서 생산라인이 멈춘 것이다.

반면 싼타페와 아반떼 등을 생산하는 2공장은 직접적인 침수피해를 입었다. 2공장은 오전 11시부터 공장 내부에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면서 이날 오후 6시 현재까지 생산이 중단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공장 내부는 직접적인 침수 피해를 입은 차량이 없지만 야적장에 세워져 있던 차량은 수십대가 침수피해가 발생했다”며 “침수된 차량은 판매를 하지 않는 만큼 소비자들은 걱정을 하지 않ㅇ아도 된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의창수협 일대는 만조시간인 오전 10시50분쯤 어른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가 빠졌다. 인근 횟집과 음식점 등 상가 1층 건물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이모(40)씨는 “횟집 등 상가 대부분이 침수피해가 생겼다”고 말했다. 용원 일대는 2003년 태풍 ‘매미’ 등 크고 작은 태풍 내습 때마다 침수피해가 발생한 곳이다.

부산 영도구 태종대 자갈마당에서 장어·조개 구이 등을 파는 포장마차 30여 개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졌다. 이곳은 2003년 태풍 ‘매미’ 때도 피해를 겪었던 곳이다.

지진피해가 난 경주시 내남면 일대도로와 농경지도 침수됐으며, 외동읍에선 산사태와 소하천 둑이 무너졌다. 형산강 물이 불어나면서 강변에 주차된 차량 60여 대가 침수됐다.

◇울산 태화강 범람 위기·하천범람=울산 태화강엔 낮 12시 40분 홍수경보가 발령됐다. 2002년 태풍 ‘루사’ 이후 14년 만이다. 이날 울산에 300㎜의 비가 내렸다. 낮 12시50분 태화강 수위는 5.58m를 기록해 홍수경보 수위(5.5m)를 넘었다. 태화강변의 국밥집 주인 박경미(44)씨는 “낮에 비가 퍼붓더니 태화강 둔치 축구장 골대가 넘어지고 차들이 둥둥 떠다녔다. 강물이 넘치겠구나 싶었는데 둑을 몇 ㎝ 남기고 비가 그쳤다”고 말했다. 울산시는 태화강 인근 주민의 대피령을 검토하다 오후 1시10분 5.66m로 정점을 찍은 물 높이가 이후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고 30분 뒤인 1시 40분에 경보를 홍수주의보로 낮췄다. 제주시 한천은 2007년 태풍 ‘나리’ 이후 다시 범람했다. 복개된 한천교 위로 물이 넘치면서 주차차량 70여 대가 침수되거나 쓸러갔다.

◇시설물 붕괴·가로수도 뽑혀=오전 6시56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국가풍력실증연구단지에 있는 풍력발전기의 날개 2개 가운데 1개가 부러졌다. 부러진 날개는 길이 68, 지름 139m에 이른다. 100m 높이의 몸체에 달려있던 날개다. 가동중이던 발전기는 초속 25m의 바람에 자동정지됐으나 순간 최대 풍속 초속 50m가 넘는 강풍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이 발전기는 제주대 산학협력단이 관리하는 5㎽ 급으로 1660가구에 전력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해상풍력 발전단지의 경제성을 알아보기 위해 만들어진 발전기다.

또 부산 다대항 동쪽 방파제 일부와 감천항 서쪽 방파제 일부가 부서졌다. 부산 동구 범일동 모 병원 인근의 높이 27m짜리 주차타워가 붕괴돼 주차타워 안에 있던 차량 4대와 주변에 주차된 차량 3대 등 7대와 인근 2층짜리 주택 일부가 부서졌다. 이 사고로 파편을 맞은 A군(12)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6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 때 핸드프린팅 행사,감독과의 대화,주요배우 인터뷰 등을 위해 해운대해수욕장에 설치된 ‘비프빌리지’가 부서졌다. 복구에 며칠 것릴 것으로 예상돼 영화제 진행에 차질이 우려된다.

오전 4시쯤 제주시 노형동 한 공사장에서 타워크레인이 강풍에 인근 빌라 위로 쓰러져 주민 6가구 8명이 주민센터로 긴급대피했다. 주민 장모(59)씨는 “새벽에 뭔가 폭발한 줄 알고 잠에서 깨 나와봤더니 크레인이 쓰러져 있었다”며 “제주에 살면서 이렇게 강한 태풍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전남 광양시 황길동 기동마을 회관 앞 고목 등 가로수 9그루와 전신주가 넘어졌다.

◇곳곳에서 산사태=오전 9시쯤 경남 통영~대전고속도로 통영방향 고성 3터널 출구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지나던 승용차 1대가 통영방향 2차로에 쌓인 토사 더미에 부딪혔다. 이 사고로 운전자가 인근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기도 했다.창원시 진해구 안민터널에서 경남도청 방향의 국도 25호선에도 흙과 돌무더기가 쏟아져 지나던 차량이 3시간 가량 통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 낙석은 오후 2시쯤 치워졌다.

◇항공기·배편 결항=제주공항에는 이날 오전 6500여 명의 발이 묶였다. 공항공사는 오전 7~10시 항공편 42편의 운항을 취소했다. 오전 10시 이후 임시편 11편 등 총 463편이 투입돼 발이 묶였던 이용객을 실어날랐다. 광주와 여수·무안공항의 항공기도 무더기 결항됐다.  오전에는 전남 목포와 여수·완도 55개 항로 92척의 여객선 운항이 통제됐다. 부산 김해공항은 36편의 항공기가 결항됐다. 대한항공과 진에어,제주항공 소속 항공기 13대는 김포·인천공항으로 피항하기도 했다.

부산·대전·제주·울산·창원·경주=황선윤·강승우·김방현·최충일·최은경·위성욱·김윤호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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